2011년 12월 18일 일요일

목양컬럼 12월


목양컬럼//                            작은것도 중요했다.

년말이 되면 마음이 좀 착찹해 지고 어쩌면 우울해 질수도 있다. 1년동안 별로 해 놓은 일이 없다는 자책감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한일이 참으로 많다. 그런데 해 놓은 것이 없다는 생각은 두가지로 구분 할수 있다.
첫째는 남이 알아 줄만한 일을 한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나는 열심히 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기에 허무할 뿐이다.  둘째는 그렇다할 큰 일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작은 일은 많았지만 눈에 드러날 만한 일이 없어서 남는게 없다는 생각이다.
이런 것들이 년말이 되면서 사람들을 슬프게 말들고 있다.

내가 어렸을때의 일이다. 초등학교(국민학교) 5학년때 우리시골 학교에서 밴드부가 생겼다. 나역시 음악을 좋아 하였기에 밴드부에 지원을 했더니 받아 주었다.
맡은 악기는 소북(드럼)이였다. 요즘처럼 큰북 작은북 챔버린이 함께 붙어있는 그런 드럼섿트가 아니라 작은 북 한 개가 나에게 배당 되었다. 나는 처음 그 북을 밴드 담당 선생님에게 받고나서 금방 다른 아이를 훌터 보았다. 그런데 항상 나와 라이벌인 사촌 동갑내기 정교가 큰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은근히 화가 났다. 어떻게 나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작은 북을 맡기고 평소 음악도 별루 좋아 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은 정교에게 큰 북을 맡긴단 말인가? 이 작은 북은 아무리 두들겨 보아도 큰북이 옆에서 치면 큰북에 뭍혀서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다.
나는 그때 용기를 가지고 밴드 선생님께 다가가서 다른 것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물론 작은 북이 가지는 보잘 것 없는 기능도 제시하면서 말이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아이 둘을 불러서 한 아이는 큰 북을 한 아이는 내가 배당 받은 작은 북을 처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교실밖에 이끌고 간다. 아주아주 멀리 밴드 연습 교실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후에 나보고 말한다. “정길아, 지금 작은 북소리가 더 잘 들리나? 큰 북소리가 더잘 들리나?(들리나~는 강원도 사투리, 들리니) 놀라운 일이다. 교실 안에서는 큰 북소리가 온통 지배해서 내가치는 소북은 소리도 들리지 않더니 멀리 떠어진 이곳에서는 큰 북소리 이후에 들려지는 ‘따다닥’하는 작은 북 소리가 큰 북소리 못하지 않게 잘 들리고 아름답기 조차 하였다.
나는 그 이후에 그 북을 사랑하였고 밴드부에서 6학년 졸업할때까지 즐겨 참여 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큰일에 관심이 있고 남들이 알아 줄 듯한 일에 관심이 있지만 세월이 조금 지난후 어떤 것이 진품이었는지, 혹 가치 있었는지는 쉽게 발견해 낼수 있다.

한해를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은 뭔가를 아쉬워 한다. 그러나 그 아쉬움이 왜 생겼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면서 작아만 보였던 나의 일들이 결코 세월 안에서 파뭍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볼수 있으면 좋겠다.

복된 성탄, 그리고 희망찬 새해(2012)가 되시기를---
                                                                                12-25-11 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작은 벽돌 하나가 빠지면 집은 무너진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촬영 서목사
 
크리스마스 트리



제가 살고있는 집 Deerfield(사슴이 뛰노는 들판?)로 들어가노라면

오른쪽 4번째 집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를 창으로 보이도록

거실에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지나가면서 매년 보는 그 트리가 또 아기예수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을

기쁘게 흔들어 주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상록수를 쓰는 것이 전통입니다.

그것은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이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히 푸르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변함없는 소망을 생각나게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소나무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특히 추운 겨울에도 소나무를 집에 들여놓고 키웠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날

루터는 친구에게 소나무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는 너무 기뻐서 집으로 안고 돌아오는데

그때 갑자기 소나무 가지가 은빛으로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달빛에 반사된 빛 이였는데

그는 그 빛나는 소나무를 통해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비추는 예수님의 생애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이 예수님의 생애가 반사되는

아름다운 빛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루터는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집에 있는 소나무 가지에

작은 촛불을 달고, 동그란 빛나는 열매를 달고, 십자가를 달고

처음 추운 그날 밤에 보석처럼 빛나던 그때의 빛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처럼

저와 여러분을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 놀라운 구원을 위해 오셨고

또 그 빛을 우리에게 계속 비쳐주시는 빛이십니다.

온세계 만방에

그리고 여러분의 안방과 거실에

변함없는 사랑에 대한 감사가 저와 여러분의 가슴에 오래오래 간직되었으면 합니다.

받은 사랑을 흡수하지 않고

달빛에 소나무 잎새가 반짝이며 반사 하는 것 처럼

또 다시 나누어 주는 늘 성탄 의미의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12-18-2011  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약한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헨리 나우웬J, M. Nouwen(1932-1996) 은 네델란드에서 출생하여 1957년에 예수회 사제로 서품 받았으나 다시 심리학을 공부하여 30대에 노틀담 대학과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풍요로운 생활에 죄책감을 느끼고 페루의 빈민가로 찾아가 민중들과 함께 하는 삶을 찾았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에서 강의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다시 영혼의 안식을 느끼지 못하자 강단을 떠나 정신지체 장애자 공동체 ‘라르쉬’공동체인 토론토 캐나다로 갑니다. 그는 거기서 24살된 애덤이라는 청년을 돌보는 일을 맡게 됩니다. 처음에 애덤과 함께 있는때 그는 두려웠고 그래서 에덤을 돕는 일이 쉽지많은 않았습니다. 그의 일과는 이러합니다.

아침 7시에 에덤의 방으로 가서 그를 깨웁니다. 그리고 부축해서 화장실을 가는데 행여 발작을 일으킬가봐 극도로 조심 합니다. 그는 헨리많큼 몸이 무거워서 옷을 벗긴 후 욕조에 들어가게 하려면 낑낑 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을 부은뒤 씻기고 머리를 감기고 다시 밖으로 나오게 하여 양치질을 해주고 머리를 빗기고 도로 침대로 데려 갑니다. 그리고 옷을 입힌 다음 뒤에서 부축하여 함께 주방으로 걸어 갑니다. 에덤이 무사히 식탁에 앉으면 그는 아침식사를 차려 줍니다. 에덤이 숟가락을 들어 입에 까지 가져 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에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의 먹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 봅니다.

그리고 헨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말없이 앉아서 누군가를 지켜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연구하고 강의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영향을 끼치고 그렇게 하기에 바빳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헨리 나우엔은 뭔가 이전에 가지지 못한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것은 일단 두려움이 약간씩 줄어들었고 그 다음 자신이 지금 에덤을 많이 생각하고 있고 에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깨어진 사람(에덤)을 통해서 자신에게 뭔가를 말씀 하시는 것을 느꼈고 에덤에게 애정을 발견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자신이 이제는 그와 서로 속한자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에덤을 통해 뭔가를 배우기 시작 하게 됩니다.

첫째 존재가 행위보다 중요함을 배우게 되었고 그것을 그(에덤)가 자신에게 가르쳐 준다고 믿었습니다. 자신은 생각 합니다. ‘내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행해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었고 나 인생이 그동안은 행위, 행위, 행위, 오직 그것의 연속이었다. 나는 쫓기는 사람이었다. 오만 가지 일이라도 해서 어떻게든 결국은 내 가치를 보이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나에게 ‘헨리, 잘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는 에덤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당신이 나와 함께 있는 한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는 상관 없습니다.-

둘째 헨리는 에덤을 통해 마음이 머리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지체 부자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이전에 자신은 머리로 생각하고 논증하고 토론하고 집필하고 하는 그런 행동으로 살았지만 지금은 마음으로 말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는 에덤의 마음이 진정한 인간의 마음임을 알았고 또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잇는 마음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셋째 헨리는 에덤에게 공동체가 무엇인가를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지금까지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해 내려고 안달하는 세상을 살았지만 이 에덤은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헨리도 필요했고 또 다른 여러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의 연약함 덕분에 자신을 비롯한 또 다른 사람들도 이 공동체에 들어 왔고 결국은 그의 연약함이 우리들의 구심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미주리 호텔에 가서 120명의 연약한 사람들에게 맛있는 중국음식을 정성껏 대접 하면서 그들에게 기쁨을 안겨 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에덤을 만난 헨리 나우웬 처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배울수 없는 일들을 우리보다 더 약한 이들에게 배우도록 하나님이 인도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스프링 필드 중앙교회 성도님들,,,



                                                                             12-11-11 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요세미티 등산로에서/촬영:서목사






                                                 사람이 되신 하나님
피엘스 부부는 아주 다정한 부부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 부인은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부인은 남편을 위해서 늘 전도합니다. “여보,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셨어요.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땅에 오셨단 말이예요” 그말을 들은 남편은 대답을 합니다.“뭐 그런말이 다 있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니 뭣 땜에 그런단 말이오”
그러던 어느날 성탄이브가 되었습니다. 그의 부인은 교회에 봉사하러 갔고 남편만 혼자 집에 있는데 피엘스는 난로가에 불을 쬐면서 앉아서 불만에 쌓여 있습니다. “에이, 남편 혼자두고 교회가서 뭘하고 있담 심심하구만--”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눈뭉치를 던지듯 유리창이 꽝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상하다 도둑이 왔나?” 그는 다시 난로가에 앉아 있는데 잠시후에 또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가만히 보니 참새 한 마리가 방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다가 창문에 부딪처서 떨어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피엘스는 가엽은 생각이 들어서 창문을 열어 주었지만 들어오지 않고 주변에만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얼른 게라지 문을 열고 이리라도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였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그는 집 입구까지 모이를 뿌리면서 오라고 했지만 그 새는 올줄을 몰랐습니다. 피엘스는 어떻게 하면 이 추운 날에 가엽은 참새를 따뜻한 집으로 들어오게 할까? 하고 연구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맞아 내가 만약에 참새가 될 수 있다면 아주 잘 설명을 하고 방안으로 데려 올텐데” 그때 바로 멀리서 크리스마스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그는 무릅을 탁 치며 “아 맞아 과연 그렇구나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이 바로 이 사건이로구나! 아내가 나가는 교회에 가야지 그리고 아내에게 말해야지-- ” 그는 외투를 입고 신발을 신었습니다.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거한다라는 것은 표준 새번역에는 우리 가운데 사셨다.” 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와 살고 있습니까? 본래는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2000년전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나타 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이땅에 요셉이라고 하는 가정에서 태어 났습니다. 어머니는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이 태어 나실 때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서 마리아에게 말했습니다.“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1:31) 마리아는 놀라서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습니까? (1:34)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럴 때 다시 하늘에서 천사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1:37)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천사가 밤에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누인 아기를 볼 것이다” (2:10-12)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천사는 하늘로 올라가고 목자들은 천사들의 말을 믿고 베들레헴으로 가서 인류를 구원할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때에 큰 별 하나를 유난히 반짝이게 하였습니다.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이 별을 보고 따라 가다가 결국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중에 수염이 긴 박사는 황금을 가지고 예수님께 드리면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입이 크고 튼튼하게 생긴 박사는 유향을 바치면서 “저희들이 별따라 여기 까지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몸이 빼빼하고 지혜롭게 생긴 박사는 귀한 약품을 가져와서 예수님께 드리며 말하기를 “예수님 추우시겠습니다. 몸조심 하시고 건강하게 잘 자라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피엘스는 참새를 따뜻한 방으로 안내 하려고 “나도 참새가 되었으면” 하고 생각을 했는데 피엘스는 참새가 되고 싶은 생각만 했고 하나님은 생각만 하신 것이 아니라 생각도 하시고 또 직접 죄많은 사람을 용서하고 구하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어떤 사람은 모르는 척 했지만 또 많은 사람은 예수님을 환영하였습니다.
                                                                                                     12-4-11 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갈릴리의 아침"
갈릴리 호수, 이스라엘에서 <촬영:2005 서목사>



2011년 12월 17일 토요일

주일낮 설교 12월(2001년)


별 따라
창 1:14, 마태2:1-12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12-25-11 서정길 목사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을 셀수 있느냐?” 창15:5 라고 물어 보신후 22:17에는 하늘의 별을 바다의 모래와 비교하면서 측량할 수 없는 숫자라고 하였습니다.
창조과학 학회에서 별의 숫자를 백해(일십백천만억조경해미) 로 추정해서  풀어 설명하였습니다. 1하고 0 이 22개로 표기 하였습니다.
좀 쉽게 표현하면 한 은하계에 천억 이상의 별이 있고 그 은하계만 해도 천억이 됩니다. 이것도 발견 가능한 숫자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별의 숫자를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절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라고 동방 박사들이 한 말을 볼 수 가 있습니다. 그 많은 별 중에 한 개가 궤도를 달리했다는 것이 발견된 것입니다.
10,000,000,000,000,000,000,000 중 한개

1. 등장한 사람들
1)헤롯
헤롯은 BC 37 년에 왕위에 즉위해서 AD 4년에 죽었습니다. 유대 정통 학자 요세프스 에 의하면 그는 BC 4년 3월 12-13일에 즉 월식이 있은 후에 죽었다고 기록을 찾아 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헤롯이 죽기 얼마 전에 태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은 BC 4-6년 정도로 추상년도가 조금씩 다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을 넘어서 13절(마2:13이후) 이후에 보면 엄청난 사건이 일어납니다. 16절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로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라는 엄청난 일입니다. 그래서 18절에 “라마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고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꿈속에 지시해서 요셉이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을 하였다가 다시 나사렛으로 간 것이 기록 되었습니다.
'헤롯'은 정통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는 야곱의 형이었던 에서의 후손으로 에돔(이두매)사람의 후예이므로 사실 유대인으로 부터는 반감을 사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본문 7절에 보면 “가만히”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가만히’는 박사들에게 공개적으로 연구케 한 것이 아니라 지금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공개하지 말고 이스라엘 역사를 연구해서 어디에서 누가 나는지를 알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2)동방 박사들
  가. 지식인들
여기 본문에 나타난 동방박사들은 아마도 예수님께 예물을 드린 것이 세가지 황금 유향 몰약이기 때문에 세명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이것이 틀렸다고 열을 내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세명이든 열명이든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전문가입니다.  전문가란 뜻은 '어떤 특정 부분에 연구해서 남에게 자신있게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람' 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두가지 면에서 전문가인데 첫째; 천문학자(별들을 연구하는 일)들입니다.
-천문학을 통해서 이세상의 이치와 큰 일들을 알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창1:14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실때에 우주의 움직임이 하늘이 있고 궁창이 있고 광명이 있고 주야가 있고 그래서 그런것들로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게 한다”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믿으면서 천문학을 연구한 사람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둘째: 각종 문서들 중 예언서들에 대한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각자마다 여러 가지 취향을 가지고 있고 그 취향과 관심에 따라서 연구도 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그런데 학자라고 해서 모두 다 자신의 분야를 열심히 연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들은 유대역사 특히 구약 예언자들의 예언과 하늘에 있는 별을 연구해서 앞으로 닥칠 일을 예견하는 일에 전문가였습니다.
나. 먼 거리의 사람들
이들은 유대인들이 아니였습니다.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방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할 때 몇몇 추상을 하게 되는 데 동방을 ‘페르시아’ ‘메데’ ‘바벨론’ 혹은 ‘아라비아’ 등등을 추상하는데 대체적으로는 ‘바벨론’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당시 바벨론이 가장 강대국이었고 또 별을 구체적으로 1년이상 한 부분을 연구할 수 있는 나라라고 할 때 그 나라가 가능하였다고 볼수 있습니다.
동시에 메시야가 날 것에 대한 예언과 별에 대한 연구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의 후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방 사람이라고 하니 정통 유대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 와서 “별을 보고 왔는데 유대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십니까?”하고 물었지만 유대 본토에서는 그때 까지만 해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소동이 났다”고 했습니다.
유대 본토에는 하나님이 이끌어 나가시는 일의 중요한 일이 였지만 상징이 되는 별에 대해서나 예언자들의 예언에 대해서 무관심 그 자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정 필요한 것은 무시했고 필요없는 잡다한 종교의식들만 판을 치는 모습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동방박사들의 별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즉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세상을 이끌어 가시는 섭리에 대한 연구였고 또한 발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천체를 통해서 인류의 모든 섭리를 이끌어 나가셨음을 말해 주고 있었으며 그것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은 이세상의 공해나 전쟁으로 인한 폐허들만 낳았지만 하나님을 바로 알려고 노력했던 지인들은 천체 속에서, 역사 속에서, 구름과 바람속에서, 한해의 마침과 한해의 시작 속에서 과연 하나님이 어떤 일들을 계획 하시는 지를 관찰하고 용납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 갈 것입니다.
 
2. 그들의(동방박사들) 위대한 점
1) 별을 분석하고 따라갔다.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두고 분석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작 할때는 분석이 필요하지만 그러나 어떤 일이 시작된 다음에는 열심히 따라가는 것이 옳습니다.
제가 교회 목회생활을 해 보니 막상 결정할 때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결정된 것을 진행 시켜 나갈 때에 부정적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가끔 볼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나 공동체 안에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결정할 때 신중히 하고 그런 다음에 스타트를 했으면 무조건 앞선 사람을 밀어주고 따라가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 직업의 본능대로 별을 분석하였습니다. 천체의 변화를 분석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일학교 시절에 연극할 때는 “이상한 별이 저기있다. 와~~ 저 이상한 별을 따라가자!” 라고 했지만 사실은 이상한 별은 아무나 볼 수 있고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이상한 표징이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동방의 박사들에게 특별한 표적을 보여 주셨는데 그 별은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현상은 아무나 볼수 있는 것이 아니고 특별히 전문전이 지식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1년을 연구한 후에야 겨우 알아낼 수 있는 별이 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별을 발견한 후에 그 별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따랐습니다.
2) 중요한 것에 대한 투자를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연구하고 발견된 기이한 별의 움직임에 대해서 그냥 논리적인 발표만 하고 연구 논문 잘 쓰고 PH. D학위 하나 받고 좋은 직장 '구글'에 들어가 열심히 일하고 잘먹고 잘 산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별따라 머나먼 길을 여행, 즉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기까지 의미있는 여행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이들을 향해서 그 많큼 메시야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신앙은 말입니다.  갈망입니다. 나의 존재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과 구원에 대한 목마름 즉 갈망이 있어야 비로소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은 말입니다. 투자입니다. 이들에게는 시간의 투자와 물질의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 여행을 하였고 또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각각 준비해서 가지고 예수님앞에 가서 예물로 드렸습니다. 서로 선물이 중복이 되지 않게 잘 의논하면서 준비한 매우 이지적이고 열정적이고 합리적이었었습니다.
3) 국수주의 에 머물지 않았다.
성경은 동방에서 박사들이 별을 따라왔고 유대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이들이 바벨론에서 온 박사들이라면 지금으로 말하면 최대강국에 최고의 지식을 소유한 사람들이 아주 약소한 국가 조그마한 동네에 찾아 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것은 의미중심, 목적중심, 예언성취 중심의 인생관이 그들에게 있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비록 이들이 다른 나라 특히 시골 조그마한 동네 ‘베들레헴’에 왔지만 거기까지의 여행은 적어도 일생일대에 있어서 시간을 투자할 충분 가치있는 일이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들은 고집많은 유대인 땅에--그리고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라고 무시하지 안았습니다.
자 잠시 성경 이야기를 다시 봅시다. 헤롯왕이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을 모아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라고 물으니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도서관에 들어가서 예언서를 펼치면서 집중적인 연구를 해서 헤롯에게 보고 합니다.
5절 을 이해하기 좋게 표현해 봅니다.  “저기-왕이시여, 왕이 말씀하신 그곳은 유대 베들레헴이라는 곳입니다. 그리고 선지자의 기록은 이렇습니다."
6절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라라 아~ 이렇게 기록되지 않았습니까? 보고 드립니다.” 제가 번역했으면 이렇게 했으리라고 생각 합니다. 그들은 그냥 조사했고 보고만 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체제는 남았지만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니 스프링필드가 작아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이 이 베들레헴이 그렇게 작아도 무시할 작은 동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에 예언이 되었고 그 예언대로 일이 성취되는 이 사건을 두고 그들은 '내가 바벨론 백성인데, 박사인데--'라는 의식을 내어 버리고 별따라 찾아 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복음은 이세상 어느곳에나 영향을 미칠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국수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서 한때 우리 한국에서 일부 사람들은 기독교는 서구종교가 아닌가 우리 한 민족은 역시 불교나 유교를 따라야지 라는 어리석을 말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서구종교, 동양종교, 백인, 아세아인, 흑인, 왕, 노예, 신사, 노동자, 모든 것을 가리지 않는 것이 바로 복음이 가지는 힘입니다. 할렐루야!!!
달과 별은 누구든지 볼수 있듯이 복음도 누구든지 믿을 수 있고 따를 수 있다는 범 세계적, 범인종적, 범 계급적이 될 때 막히지 않는 물이 작은 틈 바위 속으로 흘러가듯 거침없이 어디든 흘러 가도록 우리는 시야를 넓혀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어제와 오늘은 누구를 만나서도 “메리 크리스 마스!!” 라고 인사하면 얼굴 찡그릴 사람아무도 없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냥 할리데이로써의 메리 크리스 마스가 아니라 진정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베들레헴이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도 영접 할 수 있다는 믿음과, 범 세계적인 능력과 힘이 예수안에 있다고 믿는 그 믿음, 그것이 바로 기독교가 높이 산위에 설수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4)예수님께 경배 드렸다.
11절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략을 예물로 드리니라
박사들은 예의를 갖추어 아기께 경배 하였습니다. 경배의 대상이 마리아도 아니었고 요셉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이라도 경배의 대상은 아닙니다. 경외할 수 있고 존경의 표현을 할 수는 있고 그를 무척이나 닮고 싶은 인물은 이땅에 많이 있지만 오직 경배를 받을 수 있는 분은 유일한 하나님이신 그 아들 예수님이 됩니다.
                                                                              기도합시다.



베들레헴으로 가는 여행
눅2:1-20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12-18-11 서정길 목사
 
저는 여러분들이 기도와 염려로 LA 한가운데서 열리는 저희 아들의 결혼식에 두 장로님과 권사님 과 함께 잘 참석 했습니다. LA 한 중앙지점에 야외 결혼식장에서 결혼식을 하였는데 약300명 정도 참석을 하였습니다. 전 교회 후레스노에서 20명 정도, 우리교회 3분, LA 지역에 제가 아는 분 7-8분 그래서 저의 하객은 약 30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신부댁의 하객들이었습니다. 신부 아버지는 미국에 14살에 왔기 때문에 이민 초기의 가족이라서 친척이나 친구들, 그리고 LA 영락교회에 교우들이 많았습니다. LA 영락교회 전도사님이 주례를 하였고 제가 혼인선언과 축도를 하였습니다.
여기서 LA 는 비행기로 약 3시간이나 걸렸고 출발전에는 미국의 테러 경계태세로 말미암아 엄밀한 검사를 두 번이나 통과 해야만 했습니다. 갈때는 무사히 쉽게 통과 되었는데 올때는 짐이 좀 있어서 검열을 당했습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 같이 그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 여행이나 해 볼까요? 목적지는 베들레헴, 그러나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충분히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면서 시작해 봅시다.
예수님의 탄생 혹은 어린시절은 마태와 누가만 기록하였는데 누가의 기록이 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출발목적(1-3)
 
3절-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1절-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아구스투스 황제
아우구스 투스 황제가 실권을 잡은지 얼마되지 않자 로마제국의 통치기반을 든든히 하기위해 로마제국 전역에 걸쳐 국세조사 곧 인구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목적은 두가지 첫째는 세금 재원을 파악하기 위해서 둘째는 군대동원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서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옛날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다가 하나님께 혼난 일이 있어서 인구조사를 그리 즐겨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인구조사는 옛날이므로 조금씩 조금씩 몇 년 걸려서 이루어 지곤 했습니다.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은 나사렛이란 동네에 살았는데 유다의 자손이므로 갈릴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베들레헴은 유다지파 다윗의 족속들이 모두 그곳에 가서 인구조사에 응하여야만 하였습니다.
 
2. 머물 곳(4-7)
 
요셉은 사실 혼자 인구조사에 응하기 위한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꼭 마리아가 필요로 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혼자 둘수 없었던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처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그곳에 그냥 두고 요셉혼자 멀리 베들레헴으로 갈 수 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려깊은 요셉은 배가 부른 마리아를 데리고 함께 베들레헴으로 가게 됩니다.
7절에 ‘사관’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여관’ 이란 뜻이며 또 다른 번역으로는 ‘객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인구조사로 인해서 유다족속은 모두 한꺼번에 베들레헴으로 갔으므로 먼저 온 사람들이 이미 객실을 꽉 채운 상태입니다. 그래도 우리들의 생각에 좀 야속한 것은 아무리 먼저 방을 예약 했다 할지라도 출산직전에 있는 만삭의 임산부를 모른척 한다는 것은 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에는 마켓에 임산부가 계산할 수 있는 계산대를 따로 준비해서 임산부가 너무 오래 줄을 서서기다리지 않게 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율법을 잘 알고, 유다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들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어찌 이러 한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자기가 먼저 예약을 하여 빌린 방이지만 만삭의 임산부에게 내어 줄수 있는 그런 정도의 마음도 없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 그들은 모든 일에 기득권 행사가 심하였다고 볼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모두 욕망으로 변해 버린 이세상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은 비록 선민 이스라엘이라고 할 지라도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이 아닌 그런 마음이니 그들의 마음 한 가운데 아기예수를 맞이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리가 없다고 말 할 수 밖에 없습니다.
 
3. 또 다른 여행자들(8-20)
 
첫번째 여행은 아무 생각없는 유다 족속인들의 단순한 제도에 의한 여행자들이고
두번째 여행자는 구세주를 잉태한 마리아와 요셉의 여행이었다면
셋 째 여행은 바로 천사의 소식을 듣고 움직이게 된 목자들의 여행입니다.
유대사회에서 목동들은 천한 직업으로 분류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일은 세상 권세자 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힘없고 멸시받는 목자들과 하늘의 천사들을 통해서 시작 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10절-
여기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은 예수님의 탄생이 온 인류에게 미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사실 얼굴을 찡그릴 수가 없습니다. 기쁨의 소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큰 기쁨이 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천사는 말합니다.
11절에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즉 우리를 위해 구주가 탄생하셨다는 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기뻐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구유에 누인 예수를 처다만 보고 그냥 재미있어 하면 않됩니다.
그분은 비록 아기의 모습으로 누워있지만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실 ‘구주’인 것입니다.
따라서 항상 마리아의 품안에 안겨있는 예수님의 모습만을 그들의 심볼로 하고 있는 카톨릭이나 러시아 정교회는 이점에 있어서 중대한 잘못을 범하고 있다 할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도 아기예수에 관한 카드를 선택하서 친구들에게 보내거나 또 성탄극을 꾸며 행사를 하지만 아기 예수는 우리가 그냥 갓난 아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넘어 선다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13절에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 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지난주일에 저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우리교회는 적은 인원으로 100명이 넘는 홈레스 피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가정의 파탄으로 갈곳이 없어 고통을 겪다가 겨우 머무르는 장소에 기거하고 있는 100명이 넘는 피해를 당해 몸과 마음이 상해 있는 그들에게 여러분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아기예수의 오심을 기쁨을 전달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소식을 들은즉 여러분들이 너무너무 기뻐하며 즐거움으로 이 사역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왜 그토록 기쁨으로 그 사역을 하였는지를 압니다. 그것은 비록 한끼의 음식이지만 어려움을 당한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며 동시에 그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먼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온 천지 만물을 창조 하시고 그 가운데 인간을 창조 하셨으며 인간의 타락 이후에도 인간의 구원과 운명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이땅에 내려 보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수천년간에 걸친 이러한 구원의 계획이 드디어 결실을 맺기 시작하는 일이 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맞이하여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고 만족해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먼저 지극히 높은곳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땅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지상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아무 생각없이 나의 평화 나의 즐거움만을 생각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이 시대는 다시한번 삶의 초점을 하나님께로 돌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비로소 이 땅에는 평화가 깃들기 시작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의 근거요 기초입니다.
여기 본문 14절을 자세히 보면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이라고 표현 되었습니다. 여기 ‘기뻐하심’이란 헬라어 단어 원어에서는 ‘유도키아(eudokia)’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것’ 즉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은혜, 곧 평화의 은혜를 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요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일로써 이루어 집니다.

4. 나의 여행
저와 여러분은 지금 베들레헴으로 여행할 수 있습니다.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비행기 티켓을 끊지않고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예수님의 탄생시기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베들레헴 아기예수를 만나러 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
1)성서속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예언된 말씀과 그 예언된 말씀이 성취된 고귀한 말씀 말씀 들이 우리들의 가슴을 텃치하는 순간순간에 우리는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습니다.
2)기도로, 예수 내 마음에 계심을 확인 하므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성령의 감동하심이 우리로 하여금 베들레헴으로 지금 인도하고 있습니다. 
3)고백으로,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동정녀 탄생과 그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 하심”을 믿음으로 “예수님이 나의 주신되심” 을 고백함으로 우리는 지금 베들레헴으로 충분히 가고 있습니다.
4)증거 함으로, 예수님이 인류의 구주시다는 것을 알림으로 증거함으로 증거하고 알리고 선교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거나 헌금으로 지원 함으로 진정한 베들레헴의 여행자가 되고 있습니다.
5)믿음의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나의 가장최선의 삶이었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 함으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도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 갈 것을 소망 하면서 우리들은 충분히 당시 유다자손이라고 큰 소리치는 사람들의 무의미 함 보다 훨씬 의미있게 우리는 베들레헴으로 여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이 한번은 즐거웠고 한번은 힘들었습니다. 갈 때는 짐이 없어 즐거웠고 올 때는 여러분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 물건이나 책들로 인해서 짐이 많아서 힘 들었습니다. 그러나 보람은 있었습니다.
아무튼 여행은 간편해야 즐겁다는 것은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복음을 들어도 복음인줄 알지 못한 무지한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시에는 복음을 들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너무 애착을 가지므로 자신의 욕심이나 체면이나 직분이나 의식들의 쇠사슬에 묶여 있으므로 예수를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평화를 주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아무 힘이 없고 무력하다는 세상적 기준을 가지고 보았으므로 목자들처럼 순수한 여행, 천사들의 예고에 즉각적인 반응을 할 사람들이 많지 못했습니다.
천사의 음성에 훌훌 털거 그냥 달려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결코 많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땅에 구세주께서 오셨지만 영접지 아니하였고(요1:11) 우리는 지금 2000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으로, 믿음으로, 고백하므로, 증거함으로, 믿음의 삶으로 예수님을 향한 베들레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해 말한 것을 다 말해 주었습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 하였고 천군천사들의 찬송 내용이 그들에게 그대로 전달 되었습니다.
 
결론
베들레헴에 일찍 도착하였으나 여관을 점령해 버린 여행자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와 요셉의 여행자들
예수님의 태어나심을 축하하기위해 출발한 목자로서의 여행자들
지금 비록 2000년 후에 태어난 우리들이지만 그를 알고 믿고 고백하고 증거함으로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 각각 어떤 여행을 하고 있다고 여기 십니까?
 
여행은 목적이 있고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목적이 있고 어떤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을까요?













요세미티 국립공원/촬영:서목사



은혜와 진리
요1:1-14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12-04-11 서정길 목사
 
LA 몇 개의 큰 교회중 LA 영락 교회 가 있습니다.
그들은 약 30년째 주일 정규 예배후에 꼭 오후시간을 이용해서 홈 레스 피플들에게 선교합니다.
다운타운에 들어가서 빌딩과 빌딩사이 파킹장을 사용해서 의자를 펴고 찬양을 인도하기 시작하고 모이면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때로는 전화를 사용 할 수 있는 배려로 전화기가 없는 그들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화하곤 합니다. 모든 예배와 행사가 진행되는 중에 한쪽에서는 기도팀이 있어 그 예배와 행사진행을 위해 도고의 기도를 계속 합니다. 예배와 각종 순서를 마친 후에 자기가 앉은 의자를 반납하면 거기에서 의자와 빵과 바꿉니다.
어떤 한 청년이 10년동안 계속 찬양팀장으로 일을 했고 어떤 여청년 하나가 10년동안 기도팀장으로 일을 했습니다. 보통 홀레스 피플 선교는 재미가 없기 때문에 모두들 조금하고 빠져 버리는데 두 청년은 찬양팀장과 기도팀장을 10동안 꾸준히 해 왔는데 그 둘이 둘은 복음안에서 서로의 꾸준한 사역에 감동을하여 사귀다가 이번 12월 10일에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결혼식에 참석해서 최종 부부선언을 하게 됩니다. 기도해 주시면 잘 다녀오겠습니다.
 
복음이란 처음에는 미약한 것 같지만 이것이 잠시가 아니고 봄 여름 가을과 그리고 겨울을 맴돌면서 계속 되어질 때 거기에 어떤 파워가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아마도 수정캐기를 계속 하는 중에 여러분이 모르는 어떤힘이 작용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수정캐기가 다 끝날때에는 여러분 각자에게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저는 기대 됩니다.
성경 전체가 복음이라 할 수 있겠지만 66권의 성경중 가장 큰 기초를 기록한 책은 성경중에 요한 복음과 로마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절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 “태초에--”라는 말씀은 마치 구약성경 창세기 1:1 태초에라는 말과 같습니다.
여기 요한복음 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시작이 됩니다. 새번역과 현대인의 성경에는 “계셨다”라고 기록이 되었습니다.
“계셨다.”란 말 원어 헬라어에는 ‘엔’이란 단어가 기록되었습니다. ‘엔’ 은 영어에 was 인데 미완료 과거형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과거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에 까지 연결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땅은 지금도 존재하지만 작년에도 존재했고 1000년 전에도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1000년 후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도 제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었고 내일은 잘 모릅니다. 무슨일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고백 합니다.
시편71:6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 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나를 택 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 하리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내가 어머니의 태어서 나기 전부터 택한바 되었고 부활의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산다”
이렇게 믿기 때문에 사실로 말하기로 하면 저와 여러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완료 과거형이고 미래 진행형입니다.
 
“말씀”이라는 것은 보통 우리들은 소리로 된 말이나 글자로 된 언어를 생각합니다.
본문 1절에 나타난 말씀은 원어에는 “로고스”인데 이 로고스에는 “호”라는 단어가 붙어서 “호 로고스”라고 해야 합니다. 그 ‘호’ 는 정관사이기 때문에 “그 말씀”(14절)이라고 해야합니다. 이것은 말씀의 본질인 하나님을 뜻하는 것이다. 즉 “말씀이 곧 하나님이다.” 라고 해석을 해야합니다
우리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모세도 사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십계명을 받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정확한 말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마음에 “말씀이 곧 하나님이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2절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런데 2절에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1절에 “말씀”을 2절에는 “그” 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언어라고 생각한 것이 갑자기 사람이 된 것입니다. word 가 he 로 바뀐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언어는 언어가 아니라 그 어떤 분을 지칭한 것이고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궂이 이해 하려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사람은 책을 통해서 한 위대한 인물을 알게되고 마음속에 담게되고 또 더 나아가 그분을 닮고 싶어 합니다.
나는 쉐익스피어를 보지 못했지만 쉐익스 피어의 글중 햄릿을 읽거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으면서 그의 사상 세계관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그런 정도보다 더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4절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잠시동안의 감동이 아니라 그 분안에서 읽고 접한 사람이 생명적 관계가 형성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 빛이라는 말과 생명이란 말이 있습니다.
원래 물리세계에서 생명이란 빛이 있어야 합니다.
화분을 가끔 밖에 내다놓고 빛을 보여준다. 그래서 잘 자라게 해 줄려고 한다. 저는 얼마전에 화분에 빛을 좀 받으라고 내어 놓았다가 깜짝잊고 들여놓지 않아서 갑자기 다가온 호된 추위에 얼어 버렸습니다.
빛을 받아야 생명이 유지되고 생명이 있어야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9절-11절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 참빛이 세상에 왔는데 사람들이 그 참빛을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두움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참빛인지 몰랐 습니다. 왜 몰랐고 왜 어두움의 지배를 받았는가 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 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완악해 졌는가 하면 참 빛 보다는 다른 것에 더 많은 관심이 사람을 지배 했기 때문이다. 다른 더 많은 관심이란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신을 보호 해 줄것이라고 믿는 모든 것들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필요로 하는 것들, 안전히 지켜줄 것들, 자신의 입지를 더 높여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들, -- 이것이 얼마나 가치없다는 것을 어렴픗이 알면서 끊임없이 사람들은 그런 허망된 세상의 욕망들을 잡으려고 진력하고 있습니다.
예>짐승들이 떼로 몰려서 어딘가로 가는데 뒤에 따라가는 짐승은 앞에 놈이 가기 때문에 그냥 가는 것입니다. 나중에 앞에 것이 아니다 여기 잘못온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해도 아무의미없이 따르기만 한 다른 짐승들한테 밀려서 그냥 가게 됩니다. 나중에 제일 앞에 있는 짐승이 낭떠러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뒤로 보면서 낭떠러지니까 이제 그만가자 라고 소리 질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계속 밀려와서 많은 짐승떼들이 낭떠러지에 그냥 모두 떨어져 죽어 버리는 기현상들이 생겨 집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이 그렿게 열심히 쫓아 가는 것은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자신의 입지를 높여 주거나 자신을 안전하게 해 주는 것들은 아닙니다. 뭔가를 잘못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유대교가 없어지면 큰일나는 줄 알았습니다. 자기의 직분이 없어지면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고유권한이 없어 질까봐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 하였습니다.
 
그래서 10절에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아니 하였” 다라고 기록 했습니다.
14절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개역개정-
14절 “말씀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하나님 아버지의 외아들의 영광이었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였다.”-현대인의 성경-
 
The word become Flesh
 
--- 인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했다.” The word become Flesh
여기 육신은 영어로 Flesh- 1)살 2)육, 3)정욕 4)인간성 인간미 5)인류
그러므로 말씀이 인류가운데 머물렀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말씀은 그냥 언어가 아니고 하나님 본체의 표현이 됩니다. 신성한 하나님의 본체의 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세상 인간사, 인류 흐름의 전체에 들어왔다는 뜻이 됩니다.
구약에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장막 짓기를 명령 하셨고 그리고 그 장말 가운데 하나님이 거 하셨다. 이 거 하셨는 것이 바로 임재를 말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하심, 임재, 죄많은 인간속에 관여하심, 역사하심, 구출하심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서 이세상에 모든 인류들이 이 신비한 하나님을 만나기를 바라셨습니다. . 하여 예수님이 여러분 중에 거한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한번 만나 악수 하는 정도나 차 한잔 마시는 정도의 미딩이 아니라 오래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같이 산다는 표현이 옳을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 들이는 것이 바로 은혜요 이 은혜를 아는 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그래서 14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14절을 우리 다시 한번 읽어 봅시다.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개역개정-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서목사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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