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신년 첫주일 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사도 신경 강해(8) -전능자의 오심-
살전4:13-5:6
사도신경의 중반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중에 성육신에 관한 고백, 그의 생애에 관한 고백, 부활과 승천에 관한 고백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것으로 끝나 버린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인류와 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저 인류의 한 추억속의 한분으로 남겨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마 !’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이세상에 모든일은 결국에는 전문가로부터 평가를 받게 됩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나서도 잘했는지 못했는지 학기말에 평가서가 나오게 되고, 집을 짓고 나서도 전문가의 검사를 통해서 평가를 받게 되고, 한 개인의 인생도 그가 이세상에서 잘살았는지 잘 못살았는지 그가 죽은 다음 고인의 시신 앞에서 고별사로 평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세상에의 평가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한 인물을 평가 할때에 거기에는 그의 체면을 고려하느라고 현재 보다 높이 평가해 주기도 하고 또 고인이 되었다면 그 후손들에게 평안을 주려고 말을 미화 하기도 하고 어떤때에는 그가 고인이 되었지만 사회적 연계성 때문에 아부의 말도 얼마든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세상 마지막에 주님이 오셔서 완전하고 확실하게 평가를 해 주어야만 합니다.
만약에 주님의 완전한 심판과 평가가 없다면 이세상에 많은 억울한 인생들이 있을것이고 만약에 그 부조리와 악이 끝나지 않는다면 이세상은 악이 이기고 사단이 이기는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대적자로 믿는자를 꾀어 버림이 되게 하려는 것이고 인생을 혼란하게 만들려고 하는것이기에 그 더러운 사단은 이세상에서 결코 이길수 없을 것이고 없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완전하고 의롭고 거룩하신 주님이 오셔서 모든것을 확실하게 밝혀 주고야 세상을 끝을 낼 것을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네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예수님은 공연히 이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초림의 주님은 대속의 어린양으로써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시러 오셨지만 재림의 주님은 심판하러 오십니다. 초림의 주님은 씨를 뿌리러 왔지만 재림의 주님은 씨에 대한 추수를 하기위해 오십니다. 아마 밭에 씨를 뿌리고 추수하지 않는 농부는 없기 때문에 주님은 반드시 추수를 하기 위해 오십니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사도 신경의 고백은 예수가 재림할때 죽은자 까지도 심판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의 신관에 비추어 볼때 이것은 매우 당연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시며 동시에 역사의 주인으로 믿는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은 역사의 시작에서 부터 역사의 마침까지 모두 관활 하시는 말씀대로 알파 오매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살아 있는 자만 심판 하고 죽어 있는 자를 그냥 둔다면 지금까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땅속에 뭍힌 많은 선한 인간들은 누가 보상을 해 줍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언제나 현재 이기 때문에 당신께서 다시 이땅에 오실때에는 죽은자와 산자를 심판하시게 되므로, 적당하게 남을 괴롭히고 끝을 내려고 해도 끝이 안납니다. 적당히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끝을 내려고 해도 끝이 나지 않습니다. 선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고 악한 것도 그냥 없어져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고(롬13:12-14)와 지도(갈6:9)를 받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2-14).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9)
12-30-12(송년주일)에 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오늘의 말씀
사도 신경 강해(8) -전능자의 오심-
살전4:13-5:6
사도신경의 중반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중에 성육신에 관한 고백, 그의 생애에 관한 고백, 부활과 승천에 관한 고백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것으로 끝나 버린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인류와 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저 인류의 한 추억속의 한분으로 남겨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마 !’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이세상에 모든일은 결국에는 전문가로부터 평가를 받게 됩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나서도 잘했는지 못했는지 학기말에 평가서가 나오게 되고, 집을 짓고 나서도 전문가의 검사를 통해서 평가를 받게 되고, 한 개인의 인생도 그가 이세상에서 잘살았는지 잘 못살았는지 그가 죽은 다음 고인의 시신 앞에서 고별사로 평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세상에의 평가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한 인물을 평가 할때에 거기에는 그의 체면을 고려하느라고 현재 보다 높이 평가해 주기도 하고 또 고인이 되었다면 그 후손들에게 평안을 주려고 말을 미화 하기도 하고 어떤때에는 그가 고인이 되었지만 사회적 연계성 때문에 아부의 말도 얼마든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세상 마지막에 주님이 오셔서 완전하고 확실하게 평가를 해 주어야만 합니다.
만약에 주님의 완전한 심판과 평가가 없다면 이세상에 많은 억울한 인생들이 있을것이고 만약에 그 부조리와 악이 끝나지 않는다면 이세상은 악이 이기고 사단이 이기는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대적자로 믿는자를 꾀어 버림이 되게 하려는 것이고 인생을 혼란하게 만들려고 하는것이기에 그 더러운 사단은 이세상에서 결코 이길수 없을 것이고 없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완전하고 의롭고 거룩하신 주님이 오셔서 모든것을 확실하게 밝혀 주고야 세상을 끝을 낼 것을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네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예수님은 공연히 이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초림의 주님은 대속의 어린양으로써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시러 오셨지만 재림의 주님은 심판하러 오십니다. 초림의 주님은 씨를 뿌리러 왔지만 재림의 주님은 씨에 대한 추수를 하기위해 오십니다. 아마 밭에 씨를 뿌리고 추수하지 않는 농부는 없기 때문에 주님은 반드시 추수를 하기 위해 오십니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사도 신경의 고백은 예수가 재림할때 죽은자 까지도 심판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의 신관에 비추어 볼때 이것은 매우 당연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시며 동시에 역사의 주인으로 믿는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은 역사의 시작에서 부터 역사의 마침까지 모두 관활 하시는 말씀대로 알파 오매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살아 있는 자만 심판 하고 죽어 있는 자를 그냥 둔다면 지금까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땅속에 뭍힌 많은 선한 인간들은 누가 보상을 해 줍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언제나 현재 이기 때문에 당신께서 다시 이땅에 오실때에는 죽은자와 산자를 심판하시게 되므로, 적당하게 남을 괴롭히고 끝을 내려고 해도 끝이 안납니다. 적당히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끝을 내려고 해도 끝이 나지 않습니다. 선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고 악한 것도 그냥 없어져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고(롬13:12-14)와 지도(갈6:9)를 받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2-14).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9)
12-30-12(송년주일)에 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2012년 스프링필드에서 지는해를 바라보며
말씀
가슴으로 믿는 신비한 탄생
눅 2:1-7
1. 시기(1-2)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마리아가 임신 했을 당시 로마황제는 아구스도(Augustus)
입니다.(눅2:1) 아구스도는 로마황제로 BC 31년부터
AD 14년 까지 통치한 왕입니다. 구레뇨(Quirinus)에게는 수리아 지역을 부임하자마자 로마가 세금을 많이 거두기 위해 아구스도가 그에게 호적을 등록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이 호구조사는 구레뇨가 처음이 아니고 이전에 총독으로부터 이어져 온 일입니다. 역사가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주전 7년에서 2년 사이라고 넓게 잡아 놓고 있습니다.
아마도 어떤 것으로 단정을 해 놓으면 많은 문제들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주전 5년 쯤으로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2. 거리(3-7)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거리가 약 9마일 쯤 됩니다. 자동차로는 10분 정도 걸립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자동자도 없었고 또 요셉이 임신한 아내와 여행하여야 하기
때문에 여행은 대략 한 일주일 걸렸으리라고 생각 됩니다. 그곳에 도착하자 숙박시설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요셉이 찾을수 있는 곳은 마굿간이었고 마리아는 거기서 맏 아들을 낳았습니다. 눅
2:7 에 “맏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였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그 예수님의 여행은 광범위하게 보면 1주일이 넘는 여행이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가 이땅에 오셔서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창세전에
계셔서 하나님의 계획하심의 출발로 시작해서 죽으심 이후의 영광스런 부활과 많은 제자들 앞에서 공중에 들려 올리시고 승천 하셨고 또다시 언젠가는
왕 중 왕으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여행은 길고도 긴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믿음(8-11)
11절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종교 개혁자
Martin Luther 는 “마리아의 아들로 탄생하신 주 그리스도는 참 사람이며 참 하나님이란 사실을 마귀나 이슬람
교도나 엉성한 크리스챤들도 믿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그것에 목숨을 걸려고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믿음을 두가지로 봅니다. 첫째는 이성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 하셨고 천사들은
예수가 처녀에게서 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내용을 가슴으로 받아 들이지는 않습니다.
이성으로 믿는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때로는 그것을 사용도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 힘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귀나
이방신을 섬기는 교도나 일부 학자들과 마찬가지고 명예와 돈을 위해서 사용될 수 도 있습니다. 둘째신앙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슴으로 받아 들이는 믿음입니다. 말씀이 생각과 이성을 뛰어넘어 가슴속에
심기워 저서 뿌리는 내리는 것입니다. 이성의 믿음에서 스쳐 지나가 버린다거나 가슴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게 됩니다.
11절은 “너희를 위하여”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너희를 위하여가 바로
이 성경을 펼치고 읽는 각자에게 주관적으로 나타나야 비로소 믿음 가졌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게 되면 그 다음의 믿음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노아홍수 사건, 홍해사건,
여리고 점령 사건, 오병이어의 기적,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신 사건, 죽으심, 부활, 승천, 장차 나타나실 왕중의 왕이신 능력의 주님이 믿어지게 되고 그 의 능력이 내 안에서 계속
역동적인 역사를 잃으켜 나가게 됩니다.
부활후에 만난 도마의 나중 고백처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으로 능력있는 크리스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20:28)
12-23-12(성탄주일)에 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주님을 기다리며(대강절 셋째주일)
사64:1-12
서론 사람들은 강한척, 있는 척, 잘 아는척 그렇게 살다가 결국 자신이 어느날 갑자기 추락해 가는 모습을 느끼면서
절규하는 인생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매우 강한 것 같으나 약하고, 때때로 신나게 살다가도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때때로 ‘나는 아무 희망도 없다’는 자책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문 지상을 보면 어떤 이들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이 행동에 이르르게 되는데 그 모든 것들은 ‘기다림’에 대한 부족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인생은 모두 사실 기다림의 인생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1. 강하신 하나님(1-5)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할수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중에 그 어느때 보다 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만큼 하나님의 강하심을 체험한 백성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낙심할 것이 아니라 안심하고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자신이 강하느냐? 약하느냐?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나 자신을 지키시는 그 분이 약하신가? 아니면 강하신가? 하는 문제만 집어볼 뿐입니다. 실수로 떨어뜨린 볼펜위에 자동차가 지나가면 여지없이 짖밟혀 버리게
되곤 하지만 사람의 손에 붙잡혀 있는 볼펜은 중요한 결정을 한 후 싸인을 하므로 때로는 재산을 가지게 하고 국가간에 평화를 조약하게도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힘이나 지식이나 능력보다 사람은 누구를 믿느냐? 누구를 의지하고
사느냐? 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2. 죄악을 저지르는 백성(6-8)
그런데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하나님의 전능한 손길이 간절히 필요 하지만, 하나님이 그냥 아무 때나 이스라엘이 바라고 원하는
대로 들어 주기만 하는 분은 아니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도움의 필요를 간절히 느끼면서 오히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자신들을 고백하게 됩니다.
6절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 로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구약의 선지자 아모스는 물질적인 번영을 누리던 북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책망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그들은 공의를 상실하고 가난한 자들을 압박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서 무감각 했고 (암1;6) 부자들은 사치와
부정축재를 일삼았고, (암3:10) 특권층과 지도층은 부패를 일삼았고(암4:1) 사회 전반에는 거짓된 상행위와 사치가 만연했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지 않고 사치와
안락을 추구했었습니다.(암6:1-6)
3. 고백과 구원(9-12)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형편과 처지를 아십니다. 비록 저들이 바벨론 포로로 갈 때 저지른 저들의 잘못됨을 알지만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신30: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흩으신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사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 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결론 우리는 과거 때문에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고 미래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하여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주님은 영원무궁 토록 저와 여러분에게 바라볼수 있는 희망입니다.
오늘의 말씀
살아있는 성경(성서주일)
히4:12-13
1.위대한 책 성경
성경은 이세상에 쓰여진 책 중에서 가장 위대한 책입니다. 성경은슬픈자에게 위로를 주고 혼란에 빠진자를 지도하며 미래에 나아갈 길 까지
지도하며 충고하며 죄 가운데 있을때는 책망하여 회개하게 하고 회개하였을때는 칭찬하고 격려하여 더 나은 삶에로 인도 하십니다.
성경은 한권으로 보이지만 단순한 한권의 책이 아닙니다. 여러분야가 총괄되어 모아지고 편집된 방대한 책입니다. 성경은 문학이라든가, 역사, 시, 희곡, 전기, 철학, 그리고 과학등이 담겨져 있습니다.
2. 성경번역
성경은 이땅에
1500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왔고 그래서 그 어느 책 보다가 가장 많이 번역된 출판물입니다. 처음 성경이 쓰여질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종이와 필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돌판이나 토판에 기록되었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필기 도구가 발전함에 따라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두루마리 형태의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었습니다.
이와같은 필기도구는 신약시대까지 계속 되었고 나중에 종이가 발명되고 필기구가 발전함에 따라 종이에 기록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일일이 베껴 썼기 때문에 성경의 값은 매우 비쌌습니다.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된 성경 말씀이 종교개혁 이후로 각 나라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성경이 전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한국어로는 1875년부터 부분적으로 번역이 시작되었고 . 로스 목사를 중심으로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 이응찬(李應贊), 백홍준
(白鴻俊), 서상륜(徐相崙),
이성하(李成夏) 등이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각각 개별 낱권 으로 번역해서 출판한 것이 1882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완역은 1938년에 신구약 한글성경 번역이 완성 되었었습니다
3. 삶과 성경
성경만이 모든 시대의 인간들이 심각한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나는 어떻게 진리를 알수 있을까? 등등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종교마다 경전들이 있는데 왜? 성경만이 이 심각한 질문에 대답 할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성경만이 인간의 기원을 말씀해 주고 성경만이 인간을 구원해주고 영생에 이르도록 가르쳐 주고 성경만이 끝없는 인간의
고통문제를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윌버 M 스미드(Wilbur M. Smith) 박사는 성경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7가지 중요한 내용을 말해 줍니다.
1. 성경은 우리에게 죄를 발견하고 깨닫게 해준다.
2. 성경은 우리를 죄의 오염에서 보호해 준다.
3. 성경은 우리를 강건하게 해 준다.
4. 성경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잘 가르쳐 준다.(그가 어떤 직업을
가졌든,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어른이든, 어디에 살든)
5. 성경은 우리에게 죄를 이길수 있는 무기를 제공해 준다.
6. 성경은 우리의 인생이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도와 준다.
7.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의 능력을 제공해 준다.
성경은 성경을 많이 알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12-9-12(성서주일)에 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오늘의 설교요약 /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선교주일)
사 49: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 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가지 이르게 하리라.” (사49:6)
서론: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 하셨다.
자기 백성을 모으는 일은 쉬운
일이다.-이민사회에서 우리는 좀 힘들지만-…
그러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서 땅끝까지 구원이 이르게 하겠다.
하나님은 한 걸음 더 새로운 사명을 일찌기 이스라엘에게
부여 하셨다.
1. 우리의 현실
한달에 $700 대외 선교비로 고정지출 되고 있다. 특별 선교지출을 합하면 $1000 정도된다.
그렇다면 1년에 $10000이 넘는 선교비가 지출되고 있다. 작은
교회로 쉽지 않는 일이다.
<미조우리 호텔 $100 맥시코 $100 한국 $200 아프리카 $300 기타 유학생 대접,
홈레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 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루살렘-한인, 유학생, 미조우리 호텔, 이조우리 지역..
온 유대-맥시코, 한국
사마리아-(우리의 원수된 사람들)-일본?, 북한? 나를 해쳤던 이웃들?
땅끝-아프리카. 등등 세계 각 나라들..로 생각할 수 있다.
2. 우리의 미래
계속 기도 할 부분은 다음과 같다.
1)자신에게 질문-“내가 주의 종이 되었나?”
6절 상반절-“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2)하나님의 명령-“야곱의 지파를 일으키며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하라”
6절 중반절-
나의 가정, 나의 친척, 나의 교우에 대한 선한 행동, 지역 한인복음화와
섬김의 삶, 미조우리 전역을 두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기도.
3)하나님의 명령-“이방의 빛을 발하는 교회가 되라”6절 하반절-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생각,
자기입장, 자기 안정, 자기 보호로 몸을 도사리는
달팽이 같다. 항상 자기쪽으로 돌아오려는 시계추와 같다. 그러나 널뛰기처럼
상대방을 잘되게 하기위해 힘쓰면 그것이 곧 나의 안정, 나의 기쁨 나의 행복으로 귀결된다.
결론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그분의 뜻을 이루고 영혼구원을 하고 주님의 손길대신의 봉사를 하고 나면 나에게도 기쁨이요
행복이요. 더 큰 은혜의
삶을 살게된다.
12-2-12(선교주일)에 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