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구원의 발전(로마서 강해 15) Expansion of Salvation
롬 Romans 8:29-30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4-14-13 서정길 목사
(롬 8:29, 개정)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개정)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Rm 8:29, NIV) For those God foreknew he also predestined to be conformed to the likeness of his Son, that he might be the firstborn among many brothers.
(Rm 8:30, NIV) And those he predestined, he also called; those he called, he also justified; those he justified, he also glorified.
1. 아들의 형상을 본 받는 일(29절)
(롬 8:29, 개정)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하나님의 사역의 주체는 선택된 사람들(저와 여러분)들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일컬어 본문 29절은 ‘미리 아신 자’라고 했습니다. A 라는 사람이 B 라는 사람에게 내가 아주 좋은 사람 한분을 소개 하겠다고 해서 C 라는 사람을 소개를 했더니 c 가 b를 보고 어, 내가 아는 사람,, 그럴 때 B 가 A 에게 으시댈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여러분께 소개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이미 여러분을 미리 알고 있었던 관계입니다. 그것도 여러분이 알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여러분을 알았다는 사실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여러분을 이땅에 살도록 출생하게 하시고, 예수 믿게 하시고, 믿음으로 사는데 있어서 자라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 라고 말씀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하나님이 미리 아셨다는 말씀이 혹 의심이 되시는 분이 계십니까?
예레미야 1:5에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전에 너를 알았고”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은 여러분과 더불어 이 지구 위에서 어떤 일을 이루어 가시려고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내가 안락하게 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지구에서 태어난 이후의 지구가 어느 부분이든지 더 나아지게 만들 사명을 가지고 태어 났습니다.
2)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지으실 때 어떤 수준에 가능토록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겸손으로 때로는 낙심하는 심정으로 내가 뭘 하겠어. 라는 말을 합니다. 모세와 아브라함은 원래 훌륭한 사람이니까 그렇지 어그스틴과 조나단 에드워드나 무디나 조용기 목사님은 원래 뛰어난 사람들이니까 그렇지 라고 말해 버립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누구든지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 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그 형상대로 란 저와 여러분이 부족해 보이지만 어떤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 각자가 생각했던 육체의 본능과 한계를 넘어설수 있도록 창조 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더 높은 수준의 어떤 상태를 이루어 가시는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지음을 받은 자의 가질 첫 번째 요소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요소를 가지지 못해 모든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3)하나님은 택함을 받은 자들이 일정 수준에 도달 할수 있도록 모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여자들이나 남자들이 미장원이나 이발소에 갔을때에 머리를 그냥 알아서 잘 깍아 주세요. 아름답게 파마해 주세요. 하는 것 보다 더 구체적인 것은 이발한 사람이나 파마한 사람이 있는 잡지를 보고 한 사람을 정해서 이 사람, 즉 이 배우처럼 머리 만들어 주세요. 라고 신청 할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좋아진다. 더 나아진다. 라고 하는 것이 무조건 더 좋아지고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모델을 보여줍니다. 그 모델을 두고 사람이 더 나은 존재로 변화해 나가고 발전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 표현을 일컬어 오늘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29절)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원을 받은 사람이 현재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곳으로 올라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 더 나은 곳에 대상은 맏아들, 즉 우리의 마델(Model)이 예수님입니다.
4)왜 하나님은 구원받은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일정한 수준으로 올라가게 하시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우리 한번 답해 보십시다.
예>어떤 사람이 스프링필드에서 100마일 떨어진 어떤 작은 도시에 비즈니스를 오픈 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비즈니스가 시작을 하자마자 무슨 일인지 꼬이고 잘 안되고 손님이 적어진다면 그 사람은 생각합니다. ‘내가 잘못 판단하고 잘못결정 한게 아닐까?’ ‘괜히 이 일을 시작해서 손해만 보고 있는거야.’ 라고 생각을 하면서 적절한 기회에 문을 닫아야 할까봐 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갈수록 사람도 많이오고 장사가 아주 잘 됩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사업가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아 내가 참 잘했다. 여기에 그때 그 시기에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은 너무 잘한 거야 그때 나에게 여기 식당 차리라고 하신 분이 누구지? 그래 그분의 생각이 맞았어.’ 기분이 좋고 무슨 일을 하여도 힘이나고 그 사람은 헌금도 많이 내니 선교에도 일익을 감당하고 아이들 교육비도 척척 대 줄수 있으니 몸은 피곤하지만 너무 행복하고 만족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는데 만약에 구원의 기쁨이 없고 늘 밋밋한 상태만 유지되고 그렇다면 어떠 하겠습니까? 예수 믿은 것을 후회하고 다른 재미있는 것을 기웃 기웃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장 된다면 자신이 기분이 좋고 남에게도 예수구원 사실을 소개하고 전도도 열심히 하고 그럴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들이 구원 받은 것으로만이 아니라 구원 받은 이후에 예수님을 닮아가는 스트롱 한 성도가 되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2. 구원의 과정((30절)
요즈음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자살 하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대통령이나 정치가 노무현, 영화배우 김진실, 우수한 기업가 큰 회사의 회장님, 등등입니다. 지난 주간에는 유명한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 릭 워렌 목사님의 아들이 자살을 했습니다. 우리 보통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할까? 나같이 별 이름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그 그렇게 유명한 인물이 되어서 자살 한단 말이냐? 하는 의문을 가집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혹 정신적인 문제 사회적인 현상 등등을 말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자기 정체성에 관한 문제라고 볼수 있습니다. ‘내가 왜 태어났는가?’ ‘나는 절대자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나를 이땅에 태어나게 했는가?’ 하는 자아에 대한 존재 자체에 확신을 잃어 버리게 되면 외부로부터 오는 사회적,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처하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큰 베네핏이라면 축복받아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든가 믿는 사람끼리 공동체를 이루어 외로움을 달랜다든가 나중에 천당가서 영원히 산다고 하는 그런 베테핏 이전에 현재에 가지는 베네핏을 가지고 거기에 참된 맛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아형성과 자기 정체성을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복잡한 세상에 내가 왜 태어나고 많은 세월중에 20세기에 내가 왜 살아가고 있고 많은 세계 지구위에서 하필 미국 하고도 중부에 살게 되는가? 하는 자아 존재 개념이 뚜렷한 것이 예수 믿고 가진 베테핏 중에 가장 큰 베네핏이라고 봅니다.
그 사실이 얼마나 내 마음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람은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태어나서부터 밥을 먹고 운동을 하며 공부를 하고 사회를 얻고 점점 강해지고 영역이 넓어가고 힘이 있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그 힘과 지식과 사회영역은 자신을 만족시켜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목표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이 학위, 백만장자, 싸이처럼 인기있는 사람,,,,...
아니올씨다. 조용히 주님을 닮아 가는 삶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이 아니라 벌써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오묘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오묘한 계획을 알기전에 먼저 다루어야 할 사안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과 성화의 문제입니다. 구원과 성화는 과연 하나인가? 아니면 둘로 나누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구원은 은혜로 성화는 나의 노력으로 라는 양분화를 가져 왔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구원과 성화는 이것이 양분화 되거나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산과 언덕을 넘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 모두 속해 있다는 생각으로 본문의 말씀을 눈여겨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 합니다.
(롬 8:30, 개정)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해 하신 일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정하셨습니다. 그것을 선택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 그를 부르십니다. 그것을 소명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 그 사람이 죄가 많지만 의롭다고 일컬어 줍니다. 그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그리고 장차 하늘나라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해 주십니다. 그것을 영화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향한 계획이고 또 진행해 가는 행동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의심하거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저 불러 주신것에 대한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택으로부터 시작해서 영화를 얻기 까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잘 받으면 됩니다. 이것을 구원의 발전, 혹은 구원의 확장이라고 말 할 수가 있습니다.
이 확장은 나 자신안에 구원이 나를 지배하고 확장해 나가서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로 전이 즉 파급 되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엡1:4-6 에는 이런말씀이 있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런데 그 선택함을 입은 사람이란 완전하거나 칭찬받을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결점과 부족함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선택함을 받는 것입니다.
모세는 말을 잘 할줄 몰랐고 아브라함은 둘러대기를 잘하였고 베드로는 성격이 급하였고 바울은 건강이 좋지 않았고 이사야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었고 아모스는 농촌출신의 사람이었고 예레미야는 아이처럼 말이 서툴렀지만 하나님은 각자 그들의 부족함이나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쓰실 부분을 쓰시기 위해서 그들은 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완전하지는 물론 않고 이모저모 성격이나 생활이나 여러 가지를 보면 택함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실 부분이 있으시길래 택하였다는 것을 아시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최선을 다하여 믿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선택하실 때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 하였고 너를 여러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여호화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를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 하든지 너는 말할 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렘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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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끄신다
롬8:26-28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4-7-13 서정길 목사
(롬 8:26, 새번역)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Rm 8:26, GNT) In the same way the Spirit also comes to help us, weak as we are. For we do not know how we ought to pray; the Spirit himself pleads with God for us in groans that words cannot express.
(롬 8:27, 새번역)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Rm 8:27, GNT) And God, who sees into our hearts, knows what the thought of the Spirit is; because the Spirit pleads with God on behalf of his people and in accordance with his will.
(롬 8:28, 새번역)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Rm 8:28, GNT) We know that in all things God works for good with those who love him, those whom he has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오늘의 주제는 이끄신다. 1)도우시는 성령으로 하나님이 이끄신다.(26-27) 2)모든 것이 합력함으로 하나님이 이끄신다.(28)
북한은 최근에 공개적으로 경제건설을 갑자기 내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내세운 것이 아니라 우랴늄 농축시설을 재 가동해서 핵 폭탄기능을 강화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가지를 동시에 증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문가들 이야기로는 이 두가지는 같이 증가 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 어느 한쪽이 발전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과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바라기는 핵 폭탄 기능을 포기하고 경제건설만을 위해서 진력하였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1. 도우시는 성령으로. 26절-27절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도 마찬가지 라고 생각 됩니다. 우리는 모두 오랫동안 이세상의 생활 방법에 매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맛도 즐기고 예수도 잘 믿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는 사실 서로 배치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오직 예수가 되어야 하고 세상의 방법과 습관을 성령의 인도로 강하게 밀어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 중심으로 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 힘으로는 강하게 밀어낼 힘이 없습니다. 그것 뿐입니까?. 오히려 강하게 밀려오는 세상의 힘에 밀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수 있단 말입니까?
오늘 본문 26절은 이렇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어떤 부분에 약하고 성령은 그것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신앙인들 중에서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혹 여러분 그렇다고 해도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성령께서 기도하는 내용과 그 방법을 알려 주시고 또 도와 주십니다.
구약성경 시편을 보면 유대나라 2번째 왕이었던 다윗은 자신이 연약함에 빠졌을 때 열심히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 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 하소서” -시27:7- 라고 했습니다. 그는 사울왕에게 쫓기고 또 나중에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도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 난감한 일을 당할 때 그는 하나님을 의지 하였고 하나님의 영은 그를 기도하게 하였고 그의 기도는 애절하고 뜨거운 기도였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 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 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시28:1-2 그가 비록 비천한데 처하고 혼란중에 있을지라도 그것은 모두 하나님이 그의 영으로 인도하는 기도 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간절한 바램이 있다면 그 바램을 마음으로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 기도하여서 그 기도로 해결 하여야만 합니다.
“너희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 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 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1:5-8 -
야고보서 1장은 두가지 마음을 품지말고 오직 예수 그 한분을 향해 간구하며 사는 강력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권고 하고 있습니다.
찬342장 1절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 합니다.
세월 지나 갈수 록 의지할 것 뿐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 합니다.”
2절 “성령께서 내 맘에 밝히 비쳐 주시네 인도하심 따라서 주만 의지 합니다.
세월지나 갈수록 의지 할 것 뿐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인 롬 8:27에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그래서-)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씀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환영하고 그분이 내 속에서 친히 기도하시기를 간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우리는 똑 같은 것이 있고 다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세상 사람도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어찌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실력으로 힘으로 밀어 붙입니다. 그러다가 잘 안되면 낙심하고 좌절하다가 혹 잘 되면 교만하고 뽐냅니다.
우리들도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때때로 어찌 할수 없는 난관을 겪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실력으로 밀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조용히 기다립니다. 나의 소망과 나의 꿈이 아닌 하나님이 나를 향한 소망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려고 조용히 마음을 다스리고 성령께 의지 합니다. 그리하면 정직한 간구가 흘러 나옵니다.
예>한 그루의 나무가 잘려지면 메말라 버리지만 땅에 박혀 있으면 푸르르게 살아있고 잎을 만들고 꽃을 만들고 열매를 만듭니다.
그래서 요15:7 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라고 약속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 성령의 인도로 구하여 결실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아름답고 기름진 결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주간 유엔 안보리에서 재래식 무기 판매에 대한 규제법을 통과 했습니다. 7년전에 상신했는데 이제야 통과 되었습니다. 이것은 각종 재래식 무기판매를 테러분자들이나 국제 범죄자들에게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미국도 그 무기판매를 무시할 수 없을만큼 큰 사업의 일환이었지만 이번에 수입의 감소를 알면서도 기꺼이 yes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100 몇 개의 찬성에 반대가 3개의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이란, 시리아, 그리고 북한입니다. 이 나라들이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종교를 분석해 보니 이란이 이슬람이 99% 기독교가 0.3% 시리아가 이슬람 90% 그리고 기독교가 5% 북한이 무종교가 64% 기독교가 2% 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종교가 ‘사람의 생명’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를 좌우해 준다고 봅니다. 아울러 그들의 삶의 질도 어떤 종교에 매우 관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기독교가 많은 문제점이 없지는 않지만 여전히 한 개인과 국가의 삶의 질과 생명에 대한 존귀한 것에 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우리 개인도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주님을 사랑하되 그냥 내 마음속에 영접한 후 과연 주님이 나를 지배해 나가는 힘이 몇 %가 되며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서 행, 불행이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토마스 아킴피스의 기도(제가 보내는 번호 5번입니다. 아직 보내지 않았습니다. )
<당신을 섬기고 당신을 위해 (다른)모든 것을 경멸하는 일은 크나큰 영예요 영광입니다.
당신께 지극히 거룩한 봉사를 드리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굴복시키는 자들에게는 크나큰 은총이 주어질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모든 육신적 희락을 던져 버리는 자들은 성령의 크신 위로를 얻게 될 것입니다(마태복음 19:29).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좁은 길로 들어가며(마태복음 7:14) 모든 세상적 관심을 끊어버리는 자들은 크나큰 마음의 자유함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당신께서 손을 거두어 들이시면 고상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면 지혜가 아무 소용 없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견고히 붙들지 아니하시면 용기가 아무 도움도 못줍니다. 당신이 보호해 주시지 아니하시면 결코 순결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경성하심이 우리와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우리 자신의 경계가 아무 소용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혼자 남겨지면 가라앉고 멸망하나 당신이 우리에게 오시면 솟아올라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우리는 견고하지 못하나 당신을 통해 확고해지고, 시들어 차가우나 당신에 의해 불타오르게 됩니다.>
2. 모든 것이 합력함으로. 28절
우리가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때 두가지로 나타 납니다. 한가지는 내가 도움 받고 싶은 부분이 있고 돕는쪽에서 이렇게 도와 주고 싶다 라는 느낌을 가질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가지가 일치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서로 다를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에 입원한 시 아버님을 찾아간 며느리가 죽을 끓여 가지고 갔지만 시 아버지님은 고기반찬에 쌀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병원측에서는 과연 죽이 좋을지 아니면 일반 한식 정식을 먹는게 좋을지를 병명이나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지정을 해 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적절하다는 것은 나의 욕구대로가 아닌 빨리 회복되고 퇴원 할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음식을 주는 며느리나 먹고싶은 아버님의 충족감이 아닙니다. 빨리 퇴원 할수 있도록 환자의 입장에서 적절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 라는 사람이 어떤 필요를 느낄 때 내가 필요한 것이 있고 옆에서 보는 사람이 ‘저 사람에게는 이게 필요해’ 라고 느낄수가 있고 하나님이 나의 필요를 면밀한 눈으로 발견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때 사람마다 신자마다 각자 자기가 성령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고 싶다 라는 의도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의도가 진정 자기를 위한 길이 되는지 아니면 자기의 욕구대로 도움이 진행되면 인생에 결국은 손해가 될지 그것을 신자 자신을 잘 모를 수가 있습니다. 경건한 생활의 훈련만큼 그 부분이 감지 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모든 삶이 주님 손에 드려질 때 우리는 안심하고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읽어 봅시다.
(롬 8:28, 새번역)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들은 쉽게 ‘이번일은 나에게 불행한 일이다.’ ‘이번일은 내가 손해 보는 일이다.’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나의 부모보다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분이 주님이 십니다. 주님은 나의 태어남과 나의 성품과 나의 길을 아십니다. 나의 신체구조와 세포와 뇌 속에 예민한 가능성을 다 압니다.그러기에 인생 스케치를 주님이 주도하게 해야 합니다. 비록 스케치 할때는 그림 같지도 않지만 시간이 흘러 갈수록 아름다운 작품이 생기듯 주님은 우리인생의 길을 온전하게 이끌어 가실수 있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재가 붙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을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그 뜻 즉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람이기에 아버지의 눈길이 잠시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그 사람은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게 결론 지어 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집하지 말고 그의 이끄시는 행로에 맡기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바로 알아야 할 일은 지혜입니다. 그 지혜가 싼 물건 찾으로 이곳 저곳 다니는 지혜가 아니고 개스값 아낀다고 갈곳도 안가는 것도 아니고 모든 부분에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이어야 만 합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지혜를 어떻게 받을수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에게 참된 지도를 받을수 있습니까?
본문에 의지하면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나의 생활에서 이용을 위한 축복만을 받으려 한다면 하나님은 손을 떼기 시작합니다. 아무튼 잘 되기만 하면 돼,, 라든가. 건강이 최고야 건강 하기만 하면돼,, 라든가 많이 벌리기만 하면 돼,, 가 아닙니다. 이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요구하는 것을 그냥 아무 생각없이 주님께 바라서 해결 보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보다더 주님이 원하는 마음가짐이 필요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을 나보다도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 육신의 본능보다 나의 이익 챙기는 것 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손길을 뻣치기에 아주 적절한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주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어야 합니다. 내 뜻이 아니고 주님의 뜻입니다. 내뜻은 이러 하지만 그 뜻대로 즉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며 나의 뻣뻣한 마음이나 고집스런 마음을 꺽어 버리고 “주의 뜻이라면--” 이라고 고백하는 사는 인생이라야 합니다.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주님 말씀 하시면 내가 나아 가리다. 주님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 하신 그 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지극하시고 영원 하십니다. 이세상의 짧고 순간적인 행운의 유혹을 뿌리치고 주님을 더욱더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찌어다.” (엡6:24)
"할수 있다 하신이는~~~"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오늘의 말씀 한해 시작을 기도로
함 behavior, 됨 become, 끔 Led (로마서 강해 11)
롬 8:12-17
서론
예>한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데 있어서 공항 입국심사는 여전히 까다롭다고 합니다. 공항 입국이 까다로운 이유는 정확한 방문목적을 찾아 내는 일입니다.
우리가 늘 교회를 나오지만 교회 오는 목적, 하나님을 믿는 목적,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목적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 한지를 한번 점검 할 필요가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1. 함(12-13)-행동요구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은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말씀 했는데 공동번역 에는 “우리가 육체에 빚을 진 것은 아닙니다.” 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빚을 진 것이 없습니다. 인간의 범죄의 길을 빠져 든 이후로 우리의 육체를 공중의 권세잡은 자 사탄이 우리의 육체를 휘어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속전의 문제입니다. ‘속전’에 해당하는 ajntivlutron(안틸뤼트론)은 헬라어 원문 성경에서 사람의 ‘몸값’을 말하는 lutron(뤼트론)과 ‘대신’을 말하는 ajntiv(안티)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한 예를 든다면 당시의 노예들은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돈만 주면 사람을 살 수 있었고 노예들은 자신의 힘으론 도저히 벗어날 수 없으므로 평생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 값은 무엇으로도 대신 값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 들처럼 계속해서 양과 소등을 제물로 드린다고 해도 이것으로 죄를 사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몸값을 지불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빚이 있다면 이 영혼을 살리신 주님에 대한 빚이 있을 따름입니다. 거기에 기초한 행동을 원하는 것입니다.
2. 됨(14-15)-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어떤 일에는 반드시 기초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앞뒤 생각지 않고 그 기초과정이 없이 어떤 일을 진행하다가 보면 그만 일이 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잘살기를 원합니다. 적어도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행복의 기초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돈을 넉넉히 가지면,, 높은 지식이나 지위가 있으면,, 사람을 많이 알고 있으면,,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행복의 기초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원하고, 또 풍성한 삶을 원하고. 성령의 인도를 원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들은 성숙한 사람으로 혹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먼저 확인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누구인가? 하는 기초를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기초를 무시한 채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한다면 아마도 모래위에 집을 짖는 일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우리 기초의 시작은 바로 하나님 아들됨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4절
3. 끔(16-17)-성령의 이끄심을 민감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가지 알아야 할 일은 내가 주님을 위해 일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별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때 하나님이 가장 즐거워 하시며 그 다음 하나님이 계속 베푸시는 일은 하늘나라를 상속으로 주시는 일이고 이땅에 사는 동안도 계속 동행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동행을 즐겨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동행은 기쁨과 슬픔 평탄과
고난을 모두 포함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8:17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의 지도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 입니다. We share Christ's suffering, we
will also share his glory.
3-10-13 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오늘의말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God's Spirit lives in you
롬(Romans) 8:9-11
서론
한국을 비롯해서 미국과 세계는 지금 북한의 3차 핵 실험 문제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고려해야할 중대한 사항 하나는 선재공격에 대한 결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 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것을 확실하게 아는 정보입니다. 이것은 비단 한 국가와 국가간에 일어나는 문제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가면서 다른 사람의 정보도 중요하지만 나를 바로 아는 정보도 중요한 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 당신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타락된 자연인 그대로의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람’ 과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님’ 이 두가지가 대비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스도의 사람과 그리스도 사람이 아닌 것 과는 도저히 구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말씀했습니다.
9절 하반절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2. 당신은 인간 본성의 지배를 받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영의 지배를 받습니까?
오늘 본문 조금 앞 말씀 5절을 보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삶의 두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 본성에 의해 지배되는 생활입니다. 그 생활은 자기의 지식이나 권력이나 요령, 세상습관과 패턴, 정욕과 야심과 자기의지와 힘이 자기를 지켜 주기를 바라고 믿는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지배되는 생활 입니다. 예수께서 항상 채워 주시고 공급해 주심을 경험하는 생활, 자신의 생각보다 주님의 생각이 어떠 한 가를 물어보며 사는 생활, 주의 영으로부터 지배되며 그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3. 당신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시작되었습니까? 내주 하고 계십니까? 성령 충만 하십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내속에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그 역할이 뚜렸 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의 삼위일체이신 곧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동일한 일체이십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부터 성령이 임하셨고 그리고 그 임한 성령이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고 계속 활동하십니다. .
우리는 윤리적으로 완전하지 못해도 또 어떤 특별한 감정이 계속 일어나지 않아도 장작의 불이 붙어서 불꽃이 다른 나무에 옮겨 가듯 은은한 숯으로의 온기를 주듯 우리는 크게 혹은 작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그리스도의 사람> 입니다. (9절)
결론
사람은 혼자 걷는데 1년이 걸립니다. 기린이나 얼룩말은 낳아서 약 2시간 후면 시속 10마일 정도 달린다고 합니다.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280일을 키우고 태어난뒤 적어도 1년동안 잠시도 눈을 뗄수가 없습니다. 그후 한 20년간은 세상에 적응 하도록 키워야만 하고 30쯤 되어서야 비로소 제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육체로 말하면 기린이나 얼룩말 보다 미약하다는 말씀이 됩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육체적 본능으로 살아가서는 안된다는 오늘의 말씀이 납득이 갑니다. 육체적 본능으로 산다면 그것은 일반 동물보다 더 저급한 생활수준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인간 역사는 주님 이땅에 오심으로 나의 역사가 새롭게 기록되고 더 나아가 순간 순간의 삶이 성령 안에서, 성령의 강력한 이끄심으로 계속 영원히 새롭게 살아 날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11, 개정). 할렐루야!!
오늘의 말씀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로마서 강해 8)
롬7:15-25
1.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에 명시된 율법내용을 참으로 좋아 했습니다. 또 그것을 지키고 살아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복음이 시작 되면서 사람들은 고민하기에 이르릅니다. 율법은 이제 필요없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쓰레기 통에 던져 넣어도 된단 말인가? 아니야 언젠가는 또 필요할테니까 창고에 넣어 두었다가 다시 꺼내 쓰게 될 때 꺼낼 거야...
2. 사도바울의 심각한 고민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왜 예수께서 나의 마음속에 계시지만 나는 이토록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 고통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예수 믿고 나서 옳은 길이 무엇이고 틀린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이해 할수 없는 것 한가지는 내가 이렇게 결정해 놓고 저렇게 행동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고민이 될 때 저 무덤 속에 들어간 율법을 다시 끌어내서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혼돈이 오게 됩니다. 예수님과 결혼 했는데 죽은 옛 남편이었던 율법이 다시 그리워 지는 것입니다.
19절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한다. 20절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 죄는 옛 남편인 율법과 아주 친했던 녀석이었다.) 21절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라.”
3. 바울은 이전 예수 믿기 전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은 더 힘든 일이되고 있습니다.
예>옛날 연인들이 데이트 할 때 Coffee Shop 에 가게 되는데 다방 보다는 훨씬 더 어둡습니다. 어두운 이유는 연인끼리 얼굴을 너무 환하게 보기 싫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밝기로 보아서 좋은 인상만 심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면 화장하지 않는 상대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때에 예수님은 빛이시고 진리이시므로 내가 가까이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나의 죄가 더 드러 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언제까지 어두움에서만 살겠습니까?
4. 요즈음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고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북한이 이런 별스러운 일들을 저지른 것이 뭐 하루 이틀인가? 뭐, 이번에도 별일 없겠지~~ 라고 생각하고 넘겨 버리지만 화학이나 물질분해에 대한 연구나 핵 연구를 많이 한 사람들은 아마도 잠을 자지 못할 것입니다. 핵이 폭발할 때 그 여파가 얼마나 엄청나다는 사실을 더 많이 알수록 더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을 알고 종교적인 원리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 쯤은 능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더욱더 괴롭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롬 7:19, 개정)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롬 7:22, 개정)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개정)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4, 개정)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마지막 7:24을 새번역에 이렇게 기록 되었습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결론
해결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첫째 예수님을 떠나 버리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을 떠나 버리면 내가 하고 싶은 짓을 마음대로 하고 살수 있으니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만족이 있고 행복이 있다고 여기십니까? 둘째 예수님께 더 딱 붙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이 너무 선하시고 너무 진리이시기에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괴로울수록 더 예수님께 딱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수 있습니다. 선한 예수님, 진리이신 예수님이 부담 스러워도 꾸짖지 않으시고 후히 주시는 주님을 더욱더 사랑하는 일 밖에는 할 일이 없습니다.
어떻게 예수님께 딱 붙어 있을수 있습니까? 다음 주일에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한해 시작을 기도로
시 62:1-12
1. 기도와 건강
일본에 ‘하루야마 시게오’ 란 의사는 “인간이 원래 하나님이 창조 하실 때 몸안에 온갖 질병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실제로 그 능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분은 건강의 요소에서 첫째는 음식 문제이고 둘째는 운동, 그리고 셋째가 생각 혹은 명상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루야마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좋은 생각을 하면 뇌 속에서 좋은 호르몬이 분비되어 베타 엔돌핀이 나오고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호르몬이 분비 되어 노르아드레날린 호르몬이 분배 되는데 전자는 건강을 증진 시키고 후자는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활은 크게 두가지로 볼수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일과 나쁜 일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좋은 일이 생기면 교만하고 나쁜일이 생기면 짜증을 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 기도를 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간구 기도를 하면 됩니다. 그래서 결국 그리스도인의 생활 모두는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좋은 베타 엔돌핀이 나와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회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계속하여야 할 기도
기독교 역사상 기도응답을 가장 많이 받기로 알려진 인물, 조지 뮐러(George Müller, 1805-1898)는 영국에서 고아원을 경영할때..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아침 고아원에는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400명의 고아들과 함께 빈 식탁에 둘러 앉아 손을 맞잡고 식사기도를 드렸는데 기도가 끝났을 때 한대의 마차가 아침에 막 구운 빵과 신선한 우유를 마차에 싣고 고아원에다 내렸습니다. 어떤 공장에서 종업원들을 위한 야유회에 쓰기 위해 주문했지만 폭우로 취소되자 고아들에게 보내온 것이었습니다.조지뮐러는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끝까지 기도를 계속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2005년에 안식년을 맞아 어느 주일에 LA근교에 모자이크 교회와 오아시스 교회를 방문를 하였습니다. 그때 두 청년이 저를 따라 왔는데 그 중 한 청년은 오아시스 교회 등록 교인이고 또 한 청년은 아직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상태이었습니다. 우리는 모자이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저는 오후에 또 다른 곳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다음 장소로 옮길때 한청년은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갈데가 없어서 억지로 그도 저를 따라 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오아시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인디아나 폴리스에 있는 그의 어머니가 매일 자기 아들이 예수 믿기를 위해 기도 했는데 그 청년은 좋은 직장을 얻기위해 LA 쪽으로 이동 했지만 바쁘다는 핑게로 교회를 등한히 하였다가 그날에 큰 결단을 하였고 하나님께 붙잡힌 바가 되었습니다. 인디아나 폴리스에 사는 그 청년의 어머니가 10년 가까이 자기 아들을 위해 꾸준히 낙심치 않고 기도한 것이 저의 안식년을 통해서 응답된 것입니다.
3. 의지할 분 주 하나님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이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 하리로다” 본문 1절-2절
기도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게 초점을 맞출 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 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편46:10)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힘을 얻으면 내 안에서 새 역사가 창조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문제나 환경이나 의지할 것 없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새로운 역사가, 새로운 시간이 시작됩니다.
< 나뭇잎 색깔도 하나님이 예쁘게 물들이시거늘...>
오늘의 말씀
사명으로 빛으로 그리고 증인으로
사 49:5-7
1. 사명(5절)
사명이라고 할 때 열심히 뭔가를 일하는 것을 머릿속에 연상 하지말고 “나는 누구인가?” 하는 자기 정체성 확립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사야가 깨달은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 문제였습니다.
5절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이사야 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힘이 되신 것에 대한 근거는 바로 그의 나의 태어남에 대한 것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태어나기 이전에 나는 무엇인가 하는 답을 찾은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Before I was born, the LORD appointed me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여호와가 나를 주목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날 때 그때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시고 나를 만들어 가셨다는 고백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하여야 성공 할 것인가? 돈을 많이 벌 것인가?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인가?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수 있을 것인가? 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란 인간의 존재바탕이 무엇이고 어디이고 어떻게 지어졌다는 것을 알 때 삶의 질이 달라지고 행동반경이 달라지고 인생의 목표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일컬어 사명의 사람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2. 빛(6절)
빛이란 참 귀한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이세상의 모든 물체나 생명은 죽어갈 것입니다. 아무리 죽어가는 식물도 땅에 뿌리를 박고 적절한 수분과 빛을 받게 되면 곧 싱싱하게 살아나게 됩니다. 빛의 목적은 비추이는 것입니다. 만약에 빛이 비추이지 못한 입장에 놓여 있다면 가장 슬픈일입니다. 자신의 존재목적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빛은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빛을 받아야 할 대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빛이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야, 나좀 보아라 내가 빛이다. 얼마나 멋지고 강렬하고 자랑스러우냐 너 내가 부럽지 않으냐?” 빛은 그냥 아무 소리없이 비추이기만 할 때 그 비추임을 받은 대상들은 빛에 대해서 고마워 하고 빛을 기다리고 빛을 사모하기에 이르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으로 태어남으로부터 구별되었고 특권을 부여 받을 것에 자부심이 강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그 자부심 만으로 살아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그들이 사명을 가지고 이방을 비추기 시작하라는 경고를 한 것입니다.
6절에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3. 증인(7절)
증인이란 ‘witness’ 즉 거짓없이 본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본 사람, 실제를 안사람이 말할 때 비록 비논리 적이거나 또록또록 하게 말을 못해도 분명 흥분 되어있고 슬픔 혹은 기쁨 혹은 놀람이 그 얼굴에 나타납니다. 이것이 증언자의 실제입니다.
똑똑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를 연구하게 하고 발표하게 하면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을 할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학식이 별루 없었던 베드로 같은 사람은 그리 차분하고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엄벙덤벙하여 실수가 참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제자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에 충분한 사람이었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강림을 받은이후에 그가 전도했을 때 3000명의 신자가 생겼습니다. 그가 체험했기 때문에 그가 솔로몬의 행각에서 설교할 때 5000명이 몰려와서 회개한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어떤 결과론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결국 증인의 사명입니다. 듣는 사람이 많든 적든 말재주가 있든 없든 기회가 오든 오지 않든 증인되기 위해 작전을 짜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이든지 ‘여호와가 하나님이며 그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회개하고 그를 믿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라’ 는 확실한 증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 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7절)
2013년 신년 첫주일 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2012년 스프링필드에서 해 질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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