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7일 월요일

목양컬럼


목양컬럼
                                 

 
  •                                             당신을 향한 메시지(퍼온글)
  • 오기 직전이 가장 추운 법이고
  •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입니다.
  • 당신의 습관을 최대한 다스리십시오.
  •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이 당신을 지배하게 됩니다.
  • 떠날 때에 우리 모두는 시간이라는 모래밭 위에
  • 남겨 놓아야 하는 발자국을 기억해야 합니다.
  • 산속의 적은 물리치기 쉬워도 마음속의 적은 그렇지 못합니다.
  • 남에게 속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 자신이 남보다 영리하다고 굳게 믿는 것입니다.
  • 세상에는 종류의 사람이 있지요.
  • 하나는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는 옳은 사람과
  • 하나는 자신을 옳다고 여기는 죄인입니다.
  • 아무리 곤경에 처해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 사방이 막혀도 위쪽은 언제나 뚫려있고
  • 하늘을 바라보면 희망이 생깁니다.
  • 젊음은 마음의 상태이지 나이의 문제가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 매력은 눈을 놀라게 하지만
  • 미덕은 영혼을 사로잡습니다.
  • 믿음은 칫솔과도 같은 .
  • 정기적으로 매일 사용해야 하는 .
  • 그러나 남의 것은 수가 없는 것입니다.
  • 때때로 죽음을 생각하십시오.
  • 그리고 위에 당신의 생명을 설계하십시오.
  •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십시오.
  • 죽음의 기로에 있음을 안다면 한층 인생의 무게가 더해 것입니다.
  • 좋은 집을 지으려 하기보다 좋은 가정을 지으십시오.
  • 호화 주택을 짓고도 다투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 오막살이 안에 웃음과 노래가 가득한 집이 있으니….
  • 크게 되기 위해서는
  • 먼저 작게 시작해야 때가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 좋은 나무는 쉽게 크지 않습니다.
  • 바람이 강하면 나무도 강해지고
  • 숲이 어두우면 나무는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 갑니다.
  • 햇빛과 추위와 비와 눈은
  • 나무를 좋은 재목으로 만들어주는 최고급의 영양소입니다.
  • 인생의 시계는 한번 멈추지만
  • 언제 어느 때에 멈출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 지금이 시간이라 생각하고 살며 사랑하십시오.
  • 그리고 내일은 믿지 마십시오.
  • 때는 시계가 멈출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데 있는 것입니다.
  • 꿈은 계속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이 실현 때가 것입니다.
  • 그러므로 오늘 어떤 꿈을 가지고 있다면
  • 기회를 사용하도록 철저히 준비하십시오.
  • 어떤 바보라도 사과 속의 씨는 헤아려 있습니다.
  • 그러나 속의 사과는 아무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 별을 좋아하는 사람은 꿈이 많고,
  •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슬픈 추억이 많고,
  • 눈을 좋아하는 사람은 순수하고,
  •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름답고,
  • 모든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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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5-12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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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의 증거 12가지
1)큰 지진이 있었다.(28:2)
2)천사가 하늘로 부터 내려왔다.(28:2)
3)천사가 무덤 돌을 굴러 내었다.(28:2)
4)천사가 그 돌 위에 앉았다.(28:2)
5)천사의 형상이 번개같고 그 옷은 눈과 같이 흰 것이었다.(28:3)
6)수직하던 파수꾼들이 무서워 떨며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28:4)
7)천사가 두 여인들에게 말했다.(28:5)
8)말한 내용이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에 말씀 하시던 내용과 같다. 예수님이 3일만에 부활 하실 것이라고 하신것과 같고 (16:21, 20:19) 갈릴리로 가신다는 것(26:32)도 같다.
9)두 여인이 제자들에게 부활을 알리려고 무덤에서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달려 나왔다.(28:8)
10)두 여인이 달리는 과정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28:9)
11)두 여인이 부활하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28:9-10)
12)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서 나와 만나자고 하라고 그들에게 당부 하셨다.(28:10)
                                                                                   

                                                     예수 승천당(교회) 이스라엘/2005/촬영:서목사


                                                                                          4-8-12(부활주일)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고난주간의 사건들                          -
         <고난주간에 아래 구절을 읽으시고 묵상 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일                            사건                                            관련구절
종려주일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함                              11:1-11
월요일 예루살렘성전을깨끗이함                                  11:15-19
화요일.   예수님이예루살렘의 멸망과 자신의 재림을 예언함     24:25
             베다니에서 마리아가 예수님께 그름을 부음              12:28
             유다가 유대 지도자에게 예수님을 팔기로 약속          22:36
목요일…..유월절최후의만찬                                            13:1-30
금요일…..겟세마네동산에서배신당하고체포됨                  14:43-50
             전 대제사장 안나스가 예수님을 심문함               18:12-14
             가야바와 산헤드린 의회의 고조                        14:53-65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심문당함                        23:1-5
             예수님이 헤롯 안티파스 앞에 출두함                   23:6-12
             빌라도가 공식적으로 사형을 언도함                  23:13-25
             예수님이 조롱 당하고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림                                               15:16-27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장사됨  .               19:31-42
부활주일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심                                24:1-9
                                                                
 수요일은 쉬셨고, 토요일은 무덤속에 계신주님을 생각합니다.
주님의 고난이 우리의 구원을 이룬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는 한주간이 됩시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 기도하신 게세마네 동산/촬영:2005 서목사




 
                                                                 4-1-12(고난주간)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사순절 기도문 (1)-이번 주 매일 조용한 시간에 무릎꿇고 꼭 읽으세요
! 그리스도여,
주님의 온전하심으로 우리 모두는 은혜위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십니다.
주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은혜가 충만 하시며,
누구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여, 우리를 구하소서.

! 그리스도여, 생명과 거룩의 근원이시여,
주께서 우리 죄를 제거 하셨습니다.
우리 죄로 말미암아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셨고,
우리 허물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주여, 우리를 구하소서.

! 그리스도여,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여,
모든 위로와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부활과
우리의 평화와 화해의 근원이시오,
주여 우리를 구하소서

오 그리스도여 주님을 의지하는 모든 이의 구세주이시며
주님을 위해 죽은 모든 이의 소망이시며
모든 성도의 기쁨이시여
주여 우리를 구하소서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 죄를 담당하신 예수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세상의 구속자이신 예수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잠시 침묵 기도를 한 뒤에 --)

사랑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를 버리셨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우리 몸을 바치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살게 하소서
그리스도가 이끄시는 대로 우리 발을 굳게 지켜 주시고
그리스도가 가르치시는 대로 우리 입으로 진리를 말하게 하소서
우리 몸을 생명으로
곧 우리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로 채워 주소서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공동예배서 한국장로교 출판p300>









                                                                         
    
     우리교회 강단 사순절 장식/2012 종려주일 촬영:서목사

                                                                                                      3-25-12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수정캐기>를 하는 방법
                                       (부제:물고기를 잡으려면 얼마간 버티고 앉아 있어야 한다)

나는 몇 년전에 프로리다에서 물고기를 잡기위해 낙시대를 바닷물에 넣어놓은 후 고기가 얼른 물지않자 낙시대를 마구 흔들어 대었다. 그러나 결코 물고기는 잡히지 않았다. 그곳에 사는 친구가 옆에 와서 “낙시대를 흔들지 말고 꾹 참고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보라” 권유를 듣고 그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날에 큰 고기 5마리를 낚은 기억이 지금도 난다.
요즈음 나는 수정캐기를 하기위해 버티고 앉아있는 연습을 한다. 그래야 살아있는 하나님말씀이 내 말씀으로 가슴속에 스며들 것이다.
1. 만나는 시간을 가져라
처음에는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수정캐기의 해답을 달기위해 쓰려고 하기전에 우선 본문을 펼치고 잠시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제가 지금 이시간 하나님이 제게 주실 말씀을 받고자 합니다. 말씀 하여 주십시오. 제가 듣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 했는데에도 약간의 소음과 냄새와 잡다한 생각들이 나의 영적 고요함을 방해 할 것이다. 식사준비, 걱정꺼리, 샤핑목록, 처리해야 할 일들, 급한 일들 등등, 그러나 이것을 차단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런 것들을 마음으로 모아서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듯 생각나는 것들이 잠시 생각하게 둔다 대신 고기를 잡는 마음으로 좀더 수정캐기 용지와 성경을 앞에 놓은채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노력하라. 그리고 오늘의 읽을 성경 한 장을 천천히 한번 더 읽으면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라
2. 찾아내는 시간을 가져라
물고기가 어디에서 잘 놀고 있는지 어디로 돌아서 어디로 가는지 맑은 바닷물속을 들여다 보는 것은 또 한가지 재미있는 일꺼리이다. 그것을 보면서 혹은 물밑에 노는 고기가 시각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면 느낌으로 고기의 움직임을 상상한다. 마찬가지로 성경 한 장을 읽으면서 내 자신에게 도전되는 낱말이나 구절들이 얻어 걸리는 재미를 느낄수 있다. 전체적인 내용 파악이 혹시 되지 않더라도 그렇게 걸려지는 낱말이나 한 두 문장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나의 생활과 관련하여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노라면 성령께서 아름다운 광장으로 나를 이끌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1번 퍼즐 문제를 짝지어 보고 또 괄호는 채워보면서 더욱 본문말씀과 친밀감을 가져본다. 그래서 기록된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도록 찾아가는 시간을 가져라
3. 표현하는 시간을 가져라
물고기가 잡히면 퍼득퍼득 거리는 고기가 낙시에 걸려 수면위로 올라오는 순간은 그 희열이 말로다 표현 할 수 없다. 그리고 옆에 사람이 있다면 자랑을 하게 될 것이다. “아저씨, 이 고기 좀 보세요. 얼마나 잘 생겼는가!”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가족에게 또 자랑을 늘어 놓게 된다. 2번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 구절을 뽑아서 내 자신에게 먼저 말한다. 이 구절은 정말 나를 위해서 기록된 구절이 틀림 없다고-- 그리고 3번을 답하기 위해서 읽고 묵상한후 질문에 대답을 답해본다. 그리고 다음 주일 소그릅 만남에서 자랑을 늘어 놓는다. 아니 사실은 자랑이라기 보다는 나의 신앙고백과 주님과 교제했던 은밀한 지난 주간의 삶을 말씀과 접목해서 나누게 된다. 때로는 기도제목으로 상대방에게, 때로는 어설픈 자랑으로, 때로는 함께 어려운 삶을 지고 나아가는 동반자로써의 협력을 바라면서 입에 침 튀면서 이야기 하노라면 말씀이 2000년 전말씀에서 오늘의 말씀으로, 기록된 말씀에서 살아 있는 말씀으로 내게 다가오게 될 것이다.

                        버티고 있어야 고기가 문다.(몇마리 잡았을까?)/촬영:2012월4월 서목사




                                                                                                            3-18-12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세족 예식

유대인 가정은 유월절을 경축하는 데 있어서 모든 누룩, 즉 죄를 무교 주일의 첫날 전에 가정에서 제거해 버리는 관습을 지켰다( 12:15, 19, 20). 그와같이 신자들은 올바른 정신으로 그리스도와 가장 심오한 수준의 교제를 갖기 전에 교만, 경쟁심, 질투심, 적개심, 그리고 이기심 등을 포함하여 모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만 한다.
이러한 목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세족 예식을 제정하셨다. 그분은 모범을 보이셨을 뿐 아니라 그들도 그분이 하신 것과 똑같이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그들에게 축복을 약속하셨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3:17). 성만찬 예식 전에 거행하는 이 예식은 모든 사람이 "합당치 않게" 그 성찬에 참여하게 되지 않도록 자신을 살펴야 한다는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고전 11:27-29).
하여 이 예식은 그리스도의 사명과 그 예식에 참여하는 자의 경험에 모두 큰 의미가 있음을 시사한다.
세족 예식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봉사 생애에서의 겸비를 기념한다.* 그분은 하늘의 영광 가운데서 아버지와 동등한 분이셨으나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 2:7)셨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토록 사랑으로 베풀어 주셨건만 당신께서 구원하러 오신 자들의 대다수에 의해 배척을 받으신 것은 굴욕적인 일이었다.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전체에 걸쳐서 사단은 언제나 그분의 명예를 손상시키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범죄자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무죄하신 그분께 얼마나 큰 치욕을 가져왔겠는가!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신을 잊고 봉사의 생애를 사셨다. 그분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20:28) 오셨다. 특히 그리스도는 발을 씻기는 행위를 통하여 그분은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천한 일도 개의치 않고 행하실 용의가 있으심을 보여주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분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의 마음에 당신의 봉사의 생애와 온유함을 인상깊게 새겨 주셨다.
이 준비의 의식을 한 성찬예식으로 만드심으로써 그리스도는 다른 이들을 섬기도록 감동을 줄 부드러움과 사랑의 상태로 신자들을 이끄시고자 의도하셨다. 이 예식은 그 예식의 의미를 깊이 명상하는 자들에게 다른 이들을 겸비하고 사려 깊게 취급하기를 바라신다. 발을 씻김으로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름으로 우리는 그분의 정신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5:13).
우리가 서로 종노릇하는 발씻음의 행위를 가질때 예수님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25:40)고 칭찬 하신다.
그러나 발 씻음은 그들의 발을 깨끗케 한 것 이상을 성취했다. 그것은 더 높은 정결 곧 마음을 정결케 함과 영혼의 정결함을 상징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전신을 다 씻겨 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분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13:10)고 말씀하셨다.
목욕한 자는 깨끗하다. 그러나 맨발로 샌달을 신은 발은 곧 더러워져서 다시 씻을 필요가 생긴다. 제자들도 그러하였다. 그들의 죄들은 세례로 씻어졌지만 그들의 유혹을 받아 마음에 교만, 질투, 그리고 악을 품었었다. 그들은 그들의 주님과 밀접한 교제를 하거나 그분께서 그들과 맺으실 새 언약을 받아들일 태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발 씻김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성만찬에 참여할 준비가 갖추어지기를 갈망하셨다. 배반자 유다를 제외하고 그들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기심과 교만으로부터 정결케 되었고 그들은 서로 사랑으로 연합되었다. 예수님의 거룩한 행위를 통하여 그들은 겸비하게 되었고 온순하게 되었고 희망찬 제자들이 되었다.
                                                                                                                              (자료에서정리) 


                 .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여기에서(사진) 십자가에 달리심
                                                         이스라엘, 2005 촬영:서목사 


                                                                                                                      3-11-12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고통을 환희로
동양인들이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의 음악에 깊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서양인들도 깊이 있는 음악을 모르는 바는 아니겠지만 우리 동양인의 감성을 강하게 터치해 주는 것은 역시 그의 음악이 고통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그만큼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살아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베토벤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로서 돈만 생기면 술을 마셨기 때문에 베토벤은 11세부터 극장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돈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17세때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자 아직 어린 소년이 동생까지 부양해야 했던 것입니다. 30세부터 음악가의 생명인 귀가 이상하기 시작하여 만년에는 완전히 듣지 못하였고 심퍼니 No 9을 연주 할 때는 박수갈채뿐 아니라 큰 소동이 일어날 정도였는데 이런 관중의 열광을 옆에 있던 사람에게 주의를 받고서야 알 정도였습니다. 그는 눈보라가 내리치는 쓸쓸한 밤에 혼자 57세의 일기로 죽었습니다. 그의 눈을 감겨준 이는 지나가던 한 나그네였습니다. 이런 생활을 보면 베토벤은 불행한 사람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넘치는 행복을 그는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말하였습니다. “나는 괴로움을 뚫고 나아가 기쁨을 발견 했다”
사람이 살아 가는데 있어서 원치 않지만 끊임없는 고난과 고통이 뒤따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아무도 이 세상을 탄탄 대로로 걸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고난과 고통 그 자체는 아무 유익이 없는 것은 분명 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뚫고 나아가 새생활의 발판으로 삼고 오히려 기쁨을 찾는다면 결코 헛된일은 아닐 것이며 또 그냥 얻어지는 기쁨과는 비교 할수 없을 만큼 큰 것이 될 것입니다. 고난과 고통, 이것은 어짜피 원치 않는 것이 찾아 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것을 피하기 보다는 그것을 잘 받아 드리는 기술을 익혀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에 그 고난과 고통을 자신의 성숙과 더 나은 삶에로 전환하는 기술이나 능력을 가진다면 그 고통 속에서도 두려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통은 있어도 두려움은 없다’ 라고 말할수 있다면 또한 ‘고통이여 오너라 나는 그것을 충분히 소화할 자신이 있다’라고 말한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사실 고난이나 고통이나 염려나 걱정들은 그 보는 각도에 따라 각각 다릅니다. 백지 한 장을 땅에 놓고 내려다 보면 넓은 종이이지만 세워 놓고 위에서 보면 일직선만 겨우 보일 뿐입니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것에 두려워 하지 맙시다. 사실 두려운 것은 두려워 하는 마음 자체입니다.
릭웨런 목사님은 이런말을 하였습니다. “인격은 시험에 의해서 개발되고 다듬어 진다. 삶의 모든 영역이 시험이고 우리는 항상 시험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 문제, 성공, 갈등, 불의, 병 그리고 심지어는 날씨에 까지 반응하는 우리를 항상 지켜보고 계신다.
그리스도인들에 날마다 새 힘을 주는 애송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그리고 베토벤 음악의 마지막 부분은 환희(歡喜)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3-4-12 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샌프란 시스코/2010년 11월 촬영:서목사

                                                    풍성함과 정결함

이곳 저곳에 자주 드나들기를 즐겨하지 않는 나는 지난주에는 모처럼 우리 성도들이 경영하는 식당 두 곳에 방문 하였다. 수요일에 가본 그곳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고 몇 번의 초청에 의해 가끔 갔었던 곳이다. 도착하자마자 홀에 앉아서 식당운영과 두분의 건강을 위해 하나님께 부탁하는 잠시의 기도를 하였다.
나하고 인사 제대로 천천히 할 시간이 주워지지 않을 정도로 매우 바쁘시기에 나는 그냥 현장에 들어갔다. 분주한 손 움직임을 보니 두 분이 각자 손이 열 개 있어도 모자랄 정도이다.  9시 출근, 9시 퇴근, 너무 바빠서 뉴스 볼 시간이 없었던지 다운로드 해 놓은 듯한 한국뉴스를 켜놓고 보면서 손 재바르게 튀김 기초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홀에서 돕는 이들과 함께 두 분이 요리한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한 분은 또 자녀 학교 픽업하러 간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 있다니 K 집사님이 나와서 홀에서 모처럼 찾아온 나와 이런 대화 저런 대화 하려고 앉았지만 2시가 넘었는데도 손님이 적당하게 이야기를 방해 할 정도로 띄엄 띄엄 오신다. 자세히 보니 손님이 마치 이웃사람들과 이야기 하듯 친근미가 있다. 그리고 조금 아는 사람이라고 반값 해 주고 종류가 다르다고 음식 바꾸러 온 사람에게는 아예 무료(공짜).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뭘 도와 주지 도 못한 채 인사를 하고 나왔다. 나오는데 한 분이 또 들어가는데 평소 이야기 듣던 대로 한인 한분이 지역 타민족 학생들을 위한 찻집 경영하는 곳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음식을 또 무료로 제공하는 것을 전달 받기 위해 자동차 한 대가 식당 앞에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나는 돌아왔다.
이렇게 저렇게 다 퍼주고(?)서야 어떻게 식당운영을 할까 생각 했지만 금새 내 마음은 푸근 하였다. 이렇게 풍성하고 여유있게 경영을 하니 사람들이 이 식당에 자꾸 올 수밖에--,

한주간중 좋은 날 잡아 권사님과 모처럼 학교가지 않는 날이라(금요일) 함께 하게된 손자손녀(자녀)들을 뒷 자리에 태우고 한시간 가까이 드라이브 해서 지난주에 결석한 교우 식당으로 직행했다. 종업원이 근래 배가 많이 불러서 출산때가 되므로 자기의 임무를 감당하지 못해 부득이 주인이 대신 자리를 메웠다고 하는데 나는 주일성수의 중요성을 입 안에서만 중얼 중얼 거리고 잠시 30-40분 동안 현장에서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외부 손님이 잘 들어가지 않는 키친에 들어가 보았는데 곧 검사 받을 준비 할 것 같이 일하는 현장이 너무 깨끗하였다. 내가 검사원이라면 A+를 줄 것 같다. 권사님과 자녀들과 집사님과 식사를 하면서 잠시 시간을 가지는가 했더니  역시 2시가 훨씬 넘었는데 또 손님이 온다. 이야기가 이어질 듯 중단할 듯 애매할 정도로 끊어지지 않고 손님이 오니 우리 집사님이 받아 놓은 복음밥은 다 식어간다. 옛날에 나의 어머니가 식구들을 위해 부엌에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나중에는 밥맛을 잃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J 집사님이 아이의 손가락을 지적하면서 반지를 보라고 한다. 교회에서 전도사님의 프로그램으로 '정결서약' 을 하고 반지를 받았다고 한다. 7년 전쯤에 아틀란타 교회 청소년 연합집회시에 2만명 가량의 아이들이 정결서약을 하였다는 신문을 본 기억이 되살아 난다. 이 아이는 그 반지를 큰 보물로 여기고 지금 꼭 끼고 있다. 나는 칭찬을 하면서 그 전도사님에게 좋은 프로그램에 감사하다고 전하라는 말을 했다. 청소년들에게 매우 유익한 일인지라 금년에는 청소년 들을 위한 선교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위탁교육한 교역자들과 식사하는 시간도 한번 가져야지--생각하면서 화창한 날씨 가운데 하얀차를 타고 함께 돌아왔다.
뒷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음악듣는 아이들의 음악이 가늘게 내 귀에 들린다.
                                                                                        
                                                                     2-26-12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드라곤 레스토랑에서 유학생 초청잔치 중 
                          서목사의 '한인봉사 센타' 운영의 설명에 귀 귀우리고 있는 유학생들  2011년 10월

2012년 2월 9일 목요일

2012년 주일 낮 설교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미주리 호텔 보고회)
갈 6:6-10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4-29-12 서정길 목사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서론
다음주일은 야외예배
시간: 11시
장소: 보태니칼 센터 2400 S. Scenic 미국국기 있는 쪽에 파킹해서 똑바로 보면 아래 건물이 보입니다.
새가족과 중고등 학생, 15명 초청함.
보물찾기와 찬양대회 등 화려한 순서와 상품들이 있습니다.
 
1. 거두려는 성급함을 버리고 계속 심어라 Keep going sow (7절-8절)
7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예>농부의 심정-1981년 목사 안수 받고 바로 시골 목회를 위해 경북 안강읍 청령리로 부임했습니다. 그때 농부들의 형편을 알기위해 10시 30분쯤에 논에 심방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항상 기쁜 표정들이었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들의 일에 어떤 결과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그들은 전혀 소득이 보이지 않는 일을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을 추수때가 되고 추수감사절 예배때에는 리어커에 각종 소산물들을 잔뜩싣고 비지땀을 흘리면서 교회에 오는 그 기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년내내 그들은 일하면서 어떤 결과에 대한 낌새를 보지도 못했지만 그들은 인내하며 열심히 모 심고 논매곤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보통 어떤 일을 조금 하고 좋은 결과가 주워 지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심는대로 거둔다”는 성경의 원리를 안다면 우리는 낙심말고 꾸준히 계속 심어 나가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2. 낙심하지 말고 전진하라.Don't disappointment (9절)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 선(善)이 길게 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선의 결과가 금방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지만 어떤 효과가 보이지 않는 것 보다 더 큰 문제를 겪게 됩니다. 그것은 때로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질투를 받기도 하고 때로 사정없는 비판대에 설때도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을 잘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했으나 사람들에게 상을 받을 일을 많이 했지만 칭찬한 사람은 별로 없고 오히려 당시 대 제사장이나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에게 시기질투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옳은 일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선을 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먼저 가져야 하고 끝가지 잊지 말아야 할 일은 바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는 일입니다. 낙심하게 되면 곧 모든 일이 수포도 돌아갈 수 도 있습니다.
예>낚시-저는 꼭 선한 일이라고는 할수 없을지 모르나 세 주간전에 우광자 집사님 집 근처 어떤 계곡에 같이가서 약 15년 만에 낚시를 하였습니다. 처음에 전혀 잡히지 않아서 속이 상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목사니깐 성경적으로 낚시를 할수 없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있는 내용으로 낚시는 아니지만 고기잡는 일을 생각해 보니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깊은데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낚시 바늘과 먹이를 조금 더 깊은데로 낚시를 던져서---
금새 한 마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 잡고 나니 오랜 시간동안 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중에 경심이 엉키고 꼬여서 그것을 푸는데 20분 정도가 걸려도 풀리지 않아서 힘들게 풀면서 ‘이것 다풀고 때려쳐야 하겠다.’ 하면서 낚시를 포기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한번 시작했는데 10불을 냈으니 나의 분량 4마리는 잡아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계속 끈질기게 해서 던져서 3마리 더 잡았다.
항상 모든 일에는 고비가 있는데 그것을 잘 넘기면서 더 낙심말고 선을 행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가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3. 모든 이에게와 믿음의 가정에게 착한 일을 하라. Let us do good to all people (10절)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마26:을 보면 장차 최후의 심판때에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데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른편이 있는 양들은 주님이 예비된 나라를 상속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 하시기를 내가 주릴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때에 돌보아 주었느니라 라고 할 때 사람들이 언제 우리가 그런적이 있습니까? 라고 했더니 내 형제중 지극히 작은 자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그네를 대접 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영벌에 그렇게 나그네를 대접한 이들에게 영생에 들어가리라 라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결론
우리는 작년 10월에 미주리 호텔에 가서 15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중국 음식을 대접 하였습니다. 나는 그 일이 단순한 구제 한 번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그 일을 통해서 우리교회는 공동체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이 어떠하였습니까? “우리같이 작은 교회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음식대접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우리들도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우리의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그러한 일은 돈으로도 살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주님의 이름으로 나그네를 대접하면 주님이 받을 상급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 하리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라” ,- work we good to all men
착한일 do good-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참 이웃이라고 설교 하시면서 그를 good 사마리안 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더 키친이라는 기관이 생겼고 이 기관은 모든 이들의 도네이션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조금이나마 이웃을 돕는 일에 동참함을 기쁘게 생각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가정들에게 더 착한 일을 합시다. 


 
                                           고귀한 새생명(부활 후 둘째주일)
                                        요 John 6:32-35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4-22-12(낮) 서 정 길 목 사
요 6: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요 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 6:34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요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서론/
우리는 옛날 학교에서 우유가루 배급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줄을 서서 빈 도시락 통을 내 밀면 그속에 가득히 우유가루를 담아줍니다. 집에 돌아 오면서 참지 못해서 그 우유가루를 입에 쏫아 부으면 코와 눈에 더 많이 들어 갑니다. 어떤 날은 인내하면서 집에 와서 도시락 두껑에 물을 조금 부은후 연탄불 위에 올려 놓고 잠시 기다리면 노란색으로 변합니다. 그러면 얼른 끄집어 내어서 톡톡 부러트려 먹으면 아주 맛있었습니다. 형과 나누어 먹으면 더 맛있었습니다. 1950년대에 우리 학교는 가끔 학교에서 공부도 가르처 주고 먹을 것도 주고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배급을 주는 날 그날은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공부를배워 머리도 채우고 배급으로 굶주린 배도 채우고, 배우고 먹고.---- 참 괜찮은 날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배는 부르면서도 살을 찌지않고 또 신체에 가장 큰 비타민 ABCDE가 잔뜩 든 영양이 되는 떡을 공급 해 드릴려고 합니다.
 
1. 생명의 관련성 Relation of life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가 되었다는 기사가 있는 장면입니다.
한 어린아이로부터 예수님의 손에 놓여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친히 축사 하시자 5000명을 먹이고도 남는 프러스 알파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육신적으로도 배가 부르고 또 영적으로도 충만한 그런 기분 좋은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는 두가지를 말씀 하셧습니다.
첫째는 본문 32절에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
둘째는 본문 35절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하나님이 떡을 주시고 또 그 떡은 바로 ‘나’ 다> 라는 것입니다.
생명이란 스스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시작할 때 한 개의 정자와 한 개의 난자의 합일로 시작되고 그것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부모의 돌봄을 받지만 넓게 보면 이 세상의 모든 다른 곤충 식물 동물들이 서로 관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한 예로 아프리카에 밀림에 가면 크다란 연못이 있고 늪들이 있는데 거기 악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악어 가죽으로 된 빽을 좋아하기 때문에 마구 총으로 쏴서 악어들을 잡아 없애 버렸더니 악어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있던 많은 고기들이 다 죽더라고 합니다. 그 이유를 알아 보았더니 악어란 동물은 턱뼈가 강하고 이빨이 튼튼해서 무엇이든지 뚝뚝 잘라서 통째로 삼켰다가 소화기가 나빠서 다 흡수하지 못하고 대충 흡수하고 배설해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면 거기에서 나온 단백질등이 물속에 퍼져서 그 먹이를 작고 큰 물고기들이 먹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게 되니 연못이나 강이나 바다에 큰 물고기와 작은 물고기들이 서로 의지하고 살아 갑니다. 그 외에 동물이나 각종 생물들이 생존하는 내용들을 분석해 보면 아주 재미있을 정도로 서로 상호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의 탄생과 연장과 성장이 서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사람도 역시 혼자 살수 없습니다. 부모로부터 탄생되어지고 사회 그리고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과 나 자신과 관련된 인생을 살아 갑니다.
사람의 생존은 어떻게 이루어 집니까? 기본 적으로 공기와 물과 음식을 통해서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공기와 물과 음식으로 생존하지만 거기에만 머물러 버릴때 사람은 동물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고 그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으며 그 길 역시 어떤 분과 상호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물질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기는 하지만 그 물질로 결국 사람이 죽음이라곳에 이르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답답할 때 마셔야 할 맑은 공기와 목마를 때 마셔야 할 물, 그리고 육체적인 배고픔이 있으므로 떡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 살아 갈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사단을 향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그의 시험에 반격을 하신 것을 볼수 있습니다.
사람은 정신적인 욕망이 있어서 책을 읽고 인격을 쌓고 교양있는 생활을 하고 문화와 문명을 즐깁니다. 그리고 거기서 안락을 누리고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좀 더 나은 육신의 생활에 불과 한 것입니다.
 
2. 생명의 차등 Another animal & men
고전15:39-40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자으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현대 우주물리학은 우주의 기원은 약 150억 년 전에 우주의 대폭발(Big-bang)로 말미암아 모든 물체가 핵 분열하듯 분열되고 폭발되어 우주가 생겼고 동시에 그 변화 가운데에 각종 생명도 생겼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세상의 생명의 가치는 모두 동일하다는 결론이 나게 됩니다. 올챙이의 생명이나 하마의 생명이나 파리의 생명이나 사람의 생명이나 값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십시오 올챙이의 생명과 하마의 생명은 그 값이 비슷하다고 할찌라도 어찌 파리의 생명과 사람의 생명과 그 갚이 같을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파리의 생명과 같다고 보기 때문에 어떤 종교에서는 윤회설을 만들었고 또 그것을 믿고 있고 그들은 심지어는 지렁이를 밟아 죽이게 될까봐 걸음걸이마저도 조심을 합니다.
프란시스 쉐퍼라고 하는 한 성도는 이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과 사람을 통털어 이런 단계로 설명을 하였습니다.
 
가장 낮은 가치가 기계, 그리고 그 위가 식물, 그리고 그 위가 동물, 그리고 그 위가 인간 그리고 그 위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한과 유한의 간격이라고 설명을 하였는데 유한과 무한의 간격이란 현재 비록 유한한 존재와 같이 보여지는 인간이지만 이 인간은 무한을 향해 나아 갈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을 말 할수 있습니다.
창세기1:26을 보면 사람의 생명은 특별하고 존귀함을 말씀해 줍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시리게 하자”라고 하므로 사람의 생명의 특별성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33절을 통해 “생명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준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3. 생명의 떡 bread of life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기초적인 세가지는 공기와 물과 밥입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맑은 공기를 마시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할수 없고 여간한 병에 들었어도 많은 공기인 산소를 잘 마시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예>심지어 바다속에 있는 고기나 어항 속에 있는 금붕어들도 크고 작은 파도나 물결치는 가운데에서 공기를 마시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만약에 풍랑이나 파도가 일지 않으면 고기들도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신선하고 깨끗한 산소를 마실수 있고 또 물을 마실수 있을때 건강한 몸을 가질수 있고 적절한 음식물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떡” 이라는 말씀이 네 번 나오는데 여기 ‘떡’이라고 하는 것은 빵이라고 해도 되고 우리 한국 사람들은 밥이라고 표현해도 되지만 옛날 번역은 떡이라고 했습니다. 음식물을 통틀어서 대표적인 것으로 떡으로 표현 되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생명의 기초는 하나님께로 나왔고 이 땅에서의 그 생명의 연장은, 바로 이떡으로 말미암습니다 . 이 떡에 대해서는 그 심각성을 예수님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에 출발시에 40일 금식기도하시면서 얼마나 심각했는지 사탄이 그 문제로 시험을 했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40일 금식했으므로 참으로 그렇게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떡이 사람에게 이토록 절실하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직접 경험 하셨습니다. 

4. 영원한 생명 eternal life
그런데 이 땅 의 모든 생명은 일시적이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새로운 만나는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이 땅에서의 떡으로는 육신의 생명이 연장되지만 이 떡으로 어느 정도의 생명을 이어가지만 이 떡을 먹는다고 해서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새로운 떡이 필요한데 그 새로운 떡이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라고 오늘 본문 6:35에 말씀 하셨습니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그래서 예수님이 나신 ‘베들레헴’이란 동네가 ‘떡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떡의 근원이시고 그 떡은 영생하는 능력이 있는 떡인 것입니다.
이 떡을 저와 여러분이 먹어야 삽니다. 이 떡을 어떻게 먹습니까?
예>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어떤 한 사건이 나옵니다. 초대교회 전도자인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큰 지진이 나고 옥터가 움직이고 옥 문이 다 열리며 죄수들의 매인 것이 다 풀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간수가 자다가 이 사실을 늦게 알고 깨어보니 옥문이 열려 있으므로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로 알고 검을 빼어서 자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얼른 다가가서 우리가 도망가지 않았으니 절대로 몸을 상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간수가 두가지 사실에 놀랐습니다. 하나는 지진이 나고 옥터가 움직이고 사람의 매인 것이 풀어진 것이 놀랐고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수들이 도망가지 않은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간수가 죄수인 바울과 실라앞에 무릎을 꿇고 한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아주 유명한 말이요 그 말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슴 깊은곳에 가진 의문의 말이었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여기에 사람이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인 영생의 문제, 영원을 주는 떡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러자 바울과 실라가 “가로되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결론/
-예수님은 생명 자체 이십니다.Jesus is life
요14: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모든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Give you life from Jesus
행17:24“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예수님은 생명을 유지하게 하시는 분이시고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떡입니다. You can keep continue in life & Jesus is bread of life
요6:35”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라“
요6:35”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라“
요6:35”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라“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하다 즉 결코 ‘무엇과 무엇이 아니다’ 라는 부정사가 두 번 반복되는 것은 풍성함에 대한 극대화를 표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실 생명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며 또한 풍성할 것이다. 란 뜻입니다. 할렐루야!
             


             

                   다시 살아 나시며 사도신경 강해(7) 부활주일 후 첫 주일
                                    고전15:12-26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4-15-12 서 정 길 목 사

서론: 
사람이 한번 죽으면 다시 살수 없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아는 가장 보편적인 상식 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죽을것을 제일 무서워 합니다. 죽음은 피하려고 하면서도 피할수 없는, 인류의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죽음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병도, 부채도 공포나 불안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힘을 발휘하지 못하니 죽음이 바로 가장 큰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본 성경 마태복음28: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안식후 첫날 무덤에 갔다가 천사의 말을 듣게 되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들은 장사한지 사흘째 되던날에 무덤에 갔더니 무덤문이 옆으로 굴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놀라면서 무덤안을 들여다 보았더니 예수의 시체는 간데 없고 흰옷입은 두 천사가 있었는데 그들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 나셨고--”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후에 예수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제자들에게 나타 났습니다.
 
1.부활에 대해 불신하는 사람들
오늘 본문12절에 보니 "어떤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운데서 부활 없다 하느냐?“ 라고 기록 되었습니다.
아마도 예나 지금이나 어떤 이들은 부활에 대해서 의심만 하고 믿으려 하지 않았음을 알수 있습니다. 현대 학자들 중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부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을 붙입니다.
  1)기절설- 2)착각설- 3)도난설-
예수님이 죽은 것이 여자들이 새벽 미명에 그의 제자들이 밤중에
아니라는 억설입니다. 흥분된 상태에서 예수의 시체를 도적질 해
십자가 위에서 기절했던 것을 무덤을 찾아 갔는데 가고는 예수의 시체가
제자들은 그가 죽은줄 알고 그만 착각을 잃으켜 부활 했다고 거짓 선전
무덤에 매장 했는데 엉뚱한 무덤에 하였다는 것
밤중에 의식이 회복되어 갔다는 이야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 그런데 다른 무덤을
보고 오해 했다는 설
위의 세가지 설이 불합리적인 이유
예수님은 물과 피를 다 여자들이 무덤에서 천사를 제자들은 낙심을 하고
흘리시고 사흘후에 보았고 그 천사들이 갈리리로 뿔뿔히 흩어져 자기
부활 하셨음 가라고 지시 하였음 직업으로 돌아 갔었다
 
 
2.생명의 신비
생명에는 몇가지 신비가 있으므로 부활을 이 신비한 생명에 의해 이해를 하여야만 올바른 믿음이 가능합니다.
1)원래 생명이란 그 자체가 신비입니다. 요즈음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장기인 심장을 만들고 피부도 만들고 뼈도 만들어 냅니다. 이렇듯 인간의 모습 전체를 만들어 내지만 그러나 생명은 결코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물론 정자와 난자를 사용하여서 사람을 만들어 내기는 하지만 생명의 기초가 되는 정자와 난자는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신비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2)성장의 신비입니다. 태어날 때 인간은 매우 보잘것없는 존재로 보입니다. 한 손바닥 안에 들어 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작은 것이 어떻게 자라서 이렇게도 커지고 아름답게 멋있게 될 수 있는가 하는 것도 하나의 신비 입니다.
3)닮음의 신비 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도 하나의 신비 입니다. 닮되 얼굴도 닮고 자세도 닮고 믿음도 닮아 나아가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 모두가 하나의 신비에 속하는 일입니다.
4)부활도 바로 신비의 사건 입니다. 이 신비한 하나님의 사건을 이해 할수 없을 때 기절설이다, 착각설이다, 도난설이다 하고 야단들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세상 창조와 인간 창조때 부터 신비였고 기적들이 였습니다. 그런데도 부활을 사건을 두고 내 생각은 이렇고 내 추측에는 저렇고 내가 아는 지식으로는 이러한데-- 하고 말을 한다면 신앙의 시작도 못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전능을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성경이 믿어 질수가 있고 성경의 권위 앞에 내가 굴복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부활신앙의 유익점
사도신경 5번째 줄은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시며” 
1)부활신앙은 구원신앙의 기초입니다.
교회 다니는 이유는 예수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다는 것은 그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은 곧 그가 죽으셨으나 살으셨다는 전능하신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면 교회다니는 것이 헛것입니다.
고전15:16 본문말씀에 “만일 죽은 자가 다시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라고 하였고
사도행전2:29-32에 보면 베드로와 열한사도가 유다인과 예루살렘에 모여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증언 하기를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 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 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2)부활신앙은 곧 죽음의 문제가 해결 됩니다.
아직도 우리들 중에 기독교를 단순한 도덕종교로만 여기는 사람이 혹시 있습니까? “모든 선은 다 한가지야-” “결국은 모든 종교가 선하게 살라는 말인게지” “선하게 살고 착하게 살아야 하는거야 이것이 예수 믿는것이야”라 고 아직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미안하지만 그런 사람은 궂이 교회에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유명한 서적들을 집안에 놓고 읽으면 세상만사 바르게 살고 도덕적으로 살 길을 알수 있습니다.
물론 기독교도 도덕적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깊이 연구 하노라면 가장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인간확립을 가질수 있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의 근본은 그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부활에 참여함을 믿는 그것입니다. 공자나 석가나 마호메트나 쏘크라테스나 모두 좋은 선한 이야기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또한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지혜의 이야기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러나 죽음이후의 문제는 오직 예수님 한분만이 뚜렷이 말씀해 주었고 또 당신께서 친히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부활의 산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3)부활신앙은 인간에게 장래의 소망과 현재의 삶에 용기를 줍니다.
부활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 곧 장래의 소망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부활의 믿음이 현재를 놀랍게 변화시켜주고 있으며 낙심과 절망과 좌절에 빠진 사람이 부활의 믿음을 갖게만 되면 현재를 힘차게 용기를 가지고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예컨데 여기 두사람이 감옥에 갖혀 있습니다. 한사람은 일년후에 출감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종신형을 받은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감옥에 갖혀 있다는 사실은 꼭 같지만 1년동안 두사람의 삶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한사람은 평생 감옥에서 살다가 그냥 죽을것이니 낙심과 절망과 좌절에 빠져서 헤어 나올수 없고 되는대로 고함을 지르고 발악을 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1년후에 출감할 사람은 매일 작은 방 안에서 운동을 열심히 해서 건강을 유지 시킬 것입니다.
예>폴뉴만의 탈옥이라는 영화를 보면 그가 끈질기게 꿈꾸는 것은 나는 이 감옥에서 나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낙심과 좌절에 빠져 있지만 않고 좁디 좁은 방안에서 열심히 운동한 장면이 아직도 제 머릿속에 생생 합니다.
죄수이지만 출감 할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은 가정으로 돌아가서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자녀들의 아버지가 되고 한 사회인으로서 당당하게 역할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용기를 가지고 열심히 인내하면서 감옥의 생활을 견디어 낼 것입니다.
옳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만 장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부딪쳐도 부활의 소망이 인내하게 할 것이며 염려, 근심, 걱정, 분노 등이 모두 이 부활신앙 안에서 용해가 되며 감사와 기쁨과 웃음과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희망차게 세상을 살아 갈수가 있을 것입니다.
고전 15:22-23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 하실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께 딱 붙어 있습니까??
기도 합시다.






                                 두 여인의 증언 (부활주일)
                                         마28:1-10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4-8-12 서정길 목사
 
1.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7.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쌔
9.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서론
예>영국 어느 빌딩속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술집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술집에 불이 났습니다. 그러자 술집 주인이 시 법원에다가 진정을 했습니다. 옆에 있는 교회가 우리 술집이 항상 시끄럽다고 하더니 그들이 우리술집에 불이 나도록 기도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중직들은 대응을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기도한다고 멀쩡한 그 집에 불이 날수 있습니까?”
기도의 효력을 술집 주인이 더 믿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복음이 각기 특색을 가지고 예수님의 부활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한가지 공통된 점은 예수님께서 삼일만에 부활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 모두에게 기적으로 다가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그 반대현상을 찾아 볼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62절-66절까지를 보면 대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 총독에게
“저 유혹하던 자가 3일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한 것을 저희들이 기억 하는데 그 무덤을 3일 까지 만 굳게 지키게 하소서. 혹시 그의 제자들이 시체를 도적질 하고 예수가 부활 했다고 해 버리면 후의 유혹이나 소란이 이 전 보다 더 될까 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빌라도가 말하기를 “너희에게 파수꾼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라고 명령했고 그들이 파수꾼과 함께 가서 단순히 무덤을 지키기만 한 것이 아니고 돌을 ‘인봉’ 했다고 했습니다.
아이러니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예고를 등한시 여겼고 대적자였던 대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인봉’이란 참으로 중요하고도 엄격한 일입니다.
 
 
 
예>제가 부산 있을 때 바닷가에 친구가 보세창고에 근무 했는데 놀러 가보면 큰 창고에 외국에서 수입된 각종 물건을 넣어놓고 내 키에 약 3배 정도 되는 창고의 문을 큰 잠을 통으로 잠그고 그 위에 인봉을 하고 보관합니다. 그리고 그 물건을 수입을 주문한 회사 직원이 와서 세관원과 창고지기가 함께 있을 때 그 인봉을 띁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지키는데 당시 정치세력의 중심인 총독과 종교세력의 중심인 대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산헤드린으로 추측) 이 개입했고, 로마총독의 이름으로 무덤을 ‘인봉’하고 또 그것도 모자라 그 무덤을 “힘대로”(65절) 굳게 지켰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무덤에 접근하여 시신을 건드리는 것은 로마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어서 감히 누구도 무덤에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1. 천사를 만난 두 여인(1-4)
마28장 1절-두 여인은 본래 “무덤을 살펴 보려고”-현대인의 성경- 갔습니다. 요한복음 19:39에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안장할 때 이미 많은 향품을 사용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금요일에 허둥지둥 처리했던 매장을 좀 더 깔끔하게 매듭해 보고자 향로를 가지고 무덤을 찾아 갔었습니다.
막16:1-2 에도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두 여인이 무덤을 보려고 갔을 때 큰 지진이 나고 천사가 하늘에게 내려 왔습니다.-2절-
우리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보라”라는 말 “이 두”가 앞에 있어서 큰 지진과 천사의 놀라운 현현 장면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영광 스러운 모습(흰 옷을 입었는데 번개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것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천사가 무덤에 나타나신 것만 해도 이미 승리의 모습이 감도는데 게다가 천사가 약 2톤짜리 돌을 굴러내고 그 위에 앉았다는 것은 초 자연적인 완전한 승리를 암시 합니다.
이 돌은 로마의 권위로 봉인된 것이므로 당시 세계를 재패한 로마를 능가하는 권위가 아니면 그 돌을 굴려 내지도 못하고 더욱이 그 위에 앉았다는 것은 사람으로는 상상 할 수 없는 일이 벌어 진 것입니다. 로마가 무덤을 굳게 지키도록 세운 파수꾼들도 천사를 보고 “무서워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라고 한 것은 세상의 막강한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를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2. 두 여인의 경험 (5절- 8절)
1) 만남
두 여인과 파수꾼들이 다 천사의 초자연적인 현현과 능력앞에 무서워 하였지만 천사가 파수군이 아닌여인들에게만 “너희는 무서워 말라”(5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계십니까? 지금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계시 하시고자 하는 자에게만 천사를 통해 말씀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온땅이 어두워 지고’ -마27:45- ‘성전 휘장이 찟어지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마27:51- 예수님이 죽으실 때와 부활 하실때와 부활 이후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난 것들은 많은 사람들이 똑 같이 보고 느낄수 있지만 하나님의 위로와 관심은 하나님이 관심있는 몇몇 대상들에게만 해당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특히 아주 당시에 세력이 없었지만 주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에게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천사는 여인들을 두렵게 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도와 주기 위해 왔기 때문에 여인들의 마음을 안정 시켜 주었습니다.
천사는 “너희가 예수를 찾는 줄 내가 아노라” 라고 하여 여인들의 의도까지 안다고 하면서 여인들을 위로 했습니다. 천사는 이어서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 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6절)라고 말 했습니다.
여인들은 무덤속에 예수님이 계신가 하여 찾으러 왔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에 거기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신 것은 사실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 하신다고 하신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지만, 그 예언 자체는 너무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천사가 그 예언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천사는 예수님이 죽음과 부활을 예언 하신대로 부활 하셨다는 사실을 지적 하면서 빈 무덤을 부활의 확실한 증거로 제시한 것입니다.
2) 사명
천사는 여인들을 위로한 후 그들에게 중요한 사명이 맡겼습니다. “빨리가서 소식을 전하라”라는 것입니다. 여인들은 빨리가서 제자들에게 이 좋은 소식을 알려야 할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여인들이 전해야 할 사명은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 나셨다.’는 것이고
둘째는 ‘예수님이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테니 거기서 예수님을 뵐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천사는 이런 임무와 사명을 주되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라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열심히 뛰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이후 미국 중부에 살고 있는 오늘날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예배와 교육과 친교와 그리고 선교입니다. 부지런히 모이고 배우고 가르치며 서로 사랑으로 연합하고 그리고 이 지역과 멕시코와 한국과 아프리카를 선교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허리띠를 졸라매며 열심히 뛰어야 할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만나는 여인들((9절-10절)
여인들은 천사들을 만난 은혜(복)를 받았고,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소식을 들은 은혜(복)를 또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더 큰 은혜(복)가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는 은혜(복)입니다.
왜 이세상에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이 여인들이 그런 특별한 은혜를 경험 할수 있었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십자가 곁에 마지막 까지 있었던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장사 지낸 이후 예수님의 무덤에 제일 먼저 달려 갔고--그래서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갈릴리의 정한 장소에 이르기 전에 그 누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보았고 그리고 대화도 하였습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을 만났을때에 “평안하뇨”라는 아주 평범한 인사말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셨습니다. 여인들은 그 인사를 받을 겨를도 없이 그냥 예수님께로 나아가서 그분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 발을 붙잡았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영적인 비추임 만이 아니라 실제 몸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발을 붙잡은 것은 존경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예> 당시 사람들은 왕을 만날 때 그 왕에게 경의를 표할 때 발을 잡고 입마추었다고 합니다.
천국의 왕이시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한 것은 마땅한 일이며 여인들의 가슴에 평소에 품고 있었던 고귀한 믿음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때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10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인들은 이미 천사를 통해 “무서워 말라”라는 말을 들었으나 그러나 그들의 체험은 너무 뜻밖의 일이었고 신비하였기에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그 두려움을 해소 시켜 주시면서 천사들이 “무서워 말라---” 라고 당부한 것과 똑같은 당부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리켜 “내 형제들”이라고 하셨습니다. -10절- ‘목사’나 ‘장로’나 ‘집사’ 나 ‘사도’나 ‘신부’나 ‘교황’ 로도 칭하지 아니하고 ‘내 형제들’ 이라는 직제가 아닌 아주 친숙한 관계를 표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믿는 무리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들입니다.
 
결론
예수님께서 특별히 갈릴리에서 자신과 만나자고 하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갈릴리는 예수님이 30년간 사신 곳이고 3년간 공들여 사역을 하신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만남을 대도시 예루살렘이나 오랜 전통이 있는 쿰란 공동체의 자리인 염해 주변 ‘유대’로 하지 않고 ‘갈릴리’로 한 것입니다. 종교적인 일이 빨리 진행 될려면 유대쪽을 선호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 후에 갈릴리로 향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유대는 메시야의 복음을 거절한 곳이기 때문이요, 갈릴리는 메시야의 복음을 환영하고 전파되어간 본거지 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디가 더 힘있고 어디가 더 자리잡기 좋은가?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가 복음을 거절 했으며 어디가 복음을 받아 들였던 곳인가 하는 것이 중요했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아 들이고 환영한 여러분은 복음을 거절한 이름나 있는 도시보다 훨씬 나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예수님이 부활후에 제자들과 미딩자리를 마련한 곳이 어디 입니까?
무조건 사람많고 볼거리가 많은 워싱턴이나 백악관으로 가 아닌 소수의 사람일찌라도 하나님의 관심이 있는 곳 여기 스프링필드 미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먼저 만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대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힘과 권력이 아닌 여인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세상의 권세와 권한에 관심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어 보이며 힘없어 보이는 여인들이듯 이세상에서 장관도 국회의원도 아닌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들을 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고난의 길(고난주일)
                                               고후 4:7-10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4-1-12 서정길 목사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7-10-
 
서론:
오늘은 종려주일이며 고난주일입니다. 저는 고난주일을 포커스로 해서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 하면서 우리 인생의 고난을 잠시 상고 하시겠습니다.
 
1. 인류 고난의 원인
가. 인간의 죄(타락)
창3:16-19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나. 강팍한 마음
출 9:34-35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다. 우상숭배
삿 10:6-7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라. 하나님을 잊어버림
삼상 12:9-10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 군사령관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넘기셨더니 그들이 저희를 치매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
 
 
 
2. 고난의 과정
가. 고치고 시119:67-68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나. 연단하시고
a. 창22:1-2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b. 벧전 1:6-7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다. 기도하게 하시고
a. 삿 4:3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b. 시107:4-7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c. 호5:14-15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라. 죄를 깨닫게 하시고
눅15:16-20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심
a. 레위기 26:42,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
b. 레위기 26: 44-45
"그런즉 그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땅에 있을 때에 내가 그들을 내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고 그들과 맺은 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애굽 땅으로부터 그들을 인도하여 낸 그들의 조상과의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3. 고난의 결과
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요9:1-3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나. 겸손하게 됨
대하 7:13-16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다. 인내를 키우기 위해
롬5:1-4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라. 상급 주시기 위해
고후 4:7-10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결론
 
딤후 2:9-12 상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온전한 성찬예식
                                            고전 11:23-29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3-25-12 서정길 목사
서론:
식사의 종류-여러분, 각자 태어나서 가장 멋있고 맛있고 큰 식사시간이 언제 어디였었는지 행각해 볼수 있습니다.
식사의 종류는 급하면서 간단한 식사-대전 역에서의 식사 3분, 풍성한 디너, 처음만난 식사, 헤어질때의 식사, 기쁨의 식사, 슬픔의 식사, 최후의 식사(아주 멀리 보낼 때)
 
1. 죄로 부터의 구출을 기념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은 구약 이스라엘이 지켰던 유월절 가까운 때에 있었습니다.
출12:3-8을 제가 읽습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양을 잡을 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의 수를 따라서 하나를 잡고 각 사람이 먹을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양을 계산 할 것이며 너희 어린양은 흠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달 열 나흗날 까지 간직 하였다가 해 질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유월절 절기가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이 구출 받음을 기념 했듯이
성만찬은 영적 애굽인 이 죄많은 세상에서 믿는 믿음의 사람을 죄의 속박에서 구출을 기념합니다.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진 유월절 양의 피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했고 양고기는 백성들에게 자양분을 제공하여 애굽에서 도피할 기력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희생은 죄로부터 해방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마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확증을 되새깁니다.
요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그래서 성만찬은 저와 여러분의 구원과 용서의길을 준비했음을 선포하는 의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11:24)에 말씀 하셨습니다.
 
2. 떡과 포도열매
예수님은 자신에 관해서 나는 생명의 떡(요 6:35)이라고 말씀 하신바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적 배고픔을 해소 시켜 주시고자 당신의 살을 제공 했다는 뜻입니다.
요6:50 에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라.”
예수님이 잡수신 유월절 떡은 부풀기 효소인 누룩(이스트)를 넣지않은 떡입니다.(고전 5:7) 그래서 예수님은 흠없고 점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벧전 1:19)
3. 먹고 마심
성찬예식(Communion Service)을 일컫는 가장 흔한 명칭은 "주의 만찬"(고전 11:20)입니다. 또 다른 명칭은 "주의 상"(고전 10:21), "떡을 떼는 것"(행 20:7, 2:42 참조)*, 그리고 그 예식의 감사와 축복의 국면들을 언급하는 "주의 잔치"(Eucharist)라고도 합니다.(마 26:26, 27; 고전 10:16, 11:24)
성만찬은 슬픔의 시간이 아니라 기쁨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는 세례로 말미암아 구주의 피로 말미암아 정결케 되었다는 보증을 얻은 후 신자들은 그들의 주님과 특별한 교제에 참여할 준비가 갖추어지게 됩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그늘이 아니라 구원의 빛 가운데 서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승리를 경축할 태세를 갖추고 기쁨으로 그분의 상(床)에 나아갑니다.
요6:53,54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예식(Communion Service)이란 구경하는 것이 아니고 참여 하는 것은 받아 먹고 마시는 일입니다.
이 행사에 참여 함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에게 생명과 기쁨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 하게 될 것입니다.
 
웨스터 민스터 대 요리문답서
주제:성찬
<앞으로 제가 8 가지의 문제를 읽고 여러분이 손가락 표시를 다같이 읽도록 합시다. 여러분이 입어로 읽지않고 그냥 가만 있어도 되지만 여러분 각자가 직접 여러분의 목젖을 울려서 읽는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대168. 성찬이란 무엇인가?
☞ 성찬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명하신 바를 따라 떡과 포도주를 주고 받음으로서, 그의 죽음을 보여주는 신약의 성례이다. 성찬에 합당히 참여하는 자는 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적 영양이 되고 은혜로 자라는 것이며 주님과의 연합과 교통이 확고하여지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약속같은 신비한 몸의 지체로서 서로 사랑하고 사귐을 증거하고 새롭게 하는 것이다
 
대169. 성찬식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떡과 포도주를 어떻게 주고 받으라고 명하셨는가?
☞ 그리스도께서 성찬의 성례를 거행함에 있어서 자기의 말씀의 사역자들을 명하여 말씀과 감사와 기도를 드리게 하고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라고 하셨다. 수찬자들은 같은 결정에 의해서 그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몸을 떼어 주시고 그 피를 흘려주신 곳을 감사히 기억하면서 떡을 떼어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다.
 
대170.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가?
☞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성찬 떡과 포도주안에 함께 혹은 밑에 육체적으로 임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으로 받는 자에게 영적으로 존재하는데 그것은 외적 감각에 의존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의 성찬에 합당히 참여하는 자들은 육체적으로가 아니고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그들은 믿음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에서 오는 모든 혜택을 받아 자신들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대171. 성찬의 성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가?
☞ 성찬의 성례를 받는 사람은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곧 먼저 자신이 그리스도안에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자신의 죄와 부족을 느끼고 진리에 관하여 자신의 지식, 믿음, 회개를 살피고 하나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마음과 새로운 순종을 다짐함으로서 은혜를 새롭게 받으며 같이 묵상하고 뜨겁게 기도함으로서 성찬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대172.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혹은 성찬에 합당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심하는 자도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을까?
☞ 자신이 그리스도안에 있는지 혹은 성찬의 성례에 합당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도 비록 그에 대한 확신이 아직 없을지라도 그리스도께 대한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런 관심의 결핍을 우려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며 죄악을 떠나고 싶어하는 거짓없는 소원이 있으면 하나님 보시기에 가납된 자이다. 그런 경우에 약하고 의심하는 신자들이라도 불신앙을 애통해하고 의심을 해결하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함으로써 앞으로 더욱 더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성찬에 참여해도 좋을 뿐 아니라 참여할 의무가 있다.
 
대173. 신앙을 고백하는 성찬을 받고 싶어하는 자에게 성찬을 못받게 할 수 있을까?
☞ 신앙고백과 성찬을 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을지라도 무식하거나 의혹이 있으면 가르침을 받아 바로 깨닫게 되기 까지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에 맡기신 권세로 그들로 하여금 성찬을 못받게 할 수 있다.
 
대174. 성찬식 거행시에 성례를 받는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 성찬식 거행시에 성례를 받는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모든 거룩한 경외심과 조심스러움으로 그 규례에서 하나님을 앙망함이다. 성례의 요소 및 행동을 부지런히 지키고 주님의 몸을 주의깊게 분별하고 그의 죽음과 고난을 사랑을 다해 묵상함으로서 자신속에 은혜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게 함이다. 자신을 살펴 죄를 슬퍼하고 그리스도를 열심히 사모하여 주리고 목말라하듯 믿음으로 그를 먹게 되며 그의 충만을 받게 되고 그의 공로를 의지하고 그의 사랑을 기뻐하며 그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게됨으로, 하나님과의 언약과 모든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새로워지게 할 것이다.
 
대175. 성찬의 성례를 받은 후에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는 어떠한 것인가?
☞ 성찬의 성례를 받은 후에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는 성찬식에서 어떻게 행동했으며 또한 무슨 은혜를 받았는지를 심각하게 숙고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소생함과 위로를 받았으면 하나님을 찬송하며 이 은혜의 계속됨을 빌며 뒷걸음질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맹세한 것을 실행하며 이 규례에 자주 참여하도록 힘 쓸 것이다. 그러나 현재 아무런 혜택이 없으면 이 성례를 위한 준비와 자세를 더 정확히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두가지에서 더 하나님 앞과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자신들을 가납할 수 있으면 때가 이르러 열매가 나타날 것을 믿고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어느 편으로 보나 실패했음을 깨달으면 그들은 스스로 낮아져서 후에 더 많은 마음의 준비로 성찬식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제 기도 합시다. (성찬예식을 위한 기도)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이스라엘/2005년 촬영 서목사

    
                                             주님을 따르는 원리(사순절 4)
                                                            마16:21-28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3-18-12 서 정 길 목사
 
서론:
예>오늘날 세계 각처에 주의 복음이 전파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여론 조사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가 지난 2011년12월에 발표한 바에 의하면 기독교 인구(세계) 분포도를 보면 2010년 현재 지구촌 인구 69억명 가운데 기독교인이 세계인구의 3분의 1 이나 되는 21억8,000만명…이라고 합니다. 그 분포 지역을 보면 기독교 최대국가는 미국· 브라질· 그리고 멕시코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도가 100년 전인 1910년과 마찬가지로 지구촌 인구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100년 전에 3분의 2가 유럽에 편중돼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제 분포지역이 전 세계로 확대돼 어느 특정 대륙도 세계 기독교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이 형성되지 않고 제각기 나름대로의 신앙들이 형성되어서 진정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혹독하게 꾸짖는 모습과 교훈하시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이것을 마치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하시는 꾸짖음과 교훈으로 삼아 봄이 어떨까요?
 
1. 주님의 생각을 품어라.(21-23)
제가 성경 마16:21-23 까지를 읽겠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자 여기에 두가지 문장을 생각해 볼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베드로가 “그리하지 마옵소서” 이고 둘째 그 말에 대한 반응인 예수님의 말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입니다.
1)믿는 사람이 주를 위해 살아간다고 말은 하면서도 만약에 어떤 이세상의 다른 것을 위해 살아 간다면- 베드로는 진정, 주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주여, 그리하지 마옵소서” - 즉 “십자가를 지지 마시옵소서!” 라는 부탁인 것입니다. 그 베드로의 이야기를 잘 분석해보면 거기에는 다분히
현실보존의 문제, 나의 안정된 생활의 문제, 더 나아가 내 자신의 영향력 확장, 등등이 감추어 져 있었던 것입니다.
2)주님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하면서 실제는 자기가 평소 마음속에 존경하는 어떤 사람이나 또 다른 종교의 좋은 점을 따르면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오해하고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 이런 말을 하였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자기의 위치도 있습니다. 그 위치가 예수님이 돌아 가시면 순식간에 무너 질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베드로가 그많큼 깊히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잘 보면 그런 심리적인 것이 보입니다.
3)주님의 뜻을 위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뜻을 앞세우고 있다면-- 아마도 주님은 섭섭해 하실 것입니다.
베드로는 12제자들을 대표해서 꼭 그렇게 해야하겠다는 어떤 사명감으로 이야기 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 중에서도 예수님이 원래 이땅에 오신 목적에는 엄청나게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엇보다 주님을 따르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기준으로 삼고 산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 주님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 가려고 하면 주님이 생각하는 바를 내가 생각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우리 주님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자기를 부인하라.(24절)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라고 했습니다. 물론 크리스챤이라고 해서 자기를 부인하면서 살기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원리적으로 그렇게 해야 맞습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53: 5절에 보면 ”예수님의 찔리심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예수님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입니다.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 이사야 53장 5절에 ‘우리’ 라는 말씀을 사용 함으로 말미암아 ‘나’라는 구체적인 지적이 희석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라는 말씀을 일인칭 ‘나’라고 한번 바꾸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찔리심은 나의 허물을 인함이요 예수님의 상함은 나의 죄악을 인함입니다.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써 내가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나의 죄가 많기에 그 죄의 댓가로 예수님이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앞에 무릎 꿇고 내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백지로 만들고 더 나아가 내 자신이 없다고 부인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인이 결혼 할때나 또 임직을 받을 때 혹은 미국 대통령이나 법관이 서약을 할때 성경책에 내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서약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서약은 나의 마음대로가 아닌 이 성경의 기록대로 하겠다는 의식인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떤 사람들은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유명한 사도바울 선생님은 이렇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 했습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라고 말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 중심에 그리스도가 살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고백은 “예수님, 예수님 덕분에 영원한 삶을 소유하게 되었고 소망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감사 합니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 전체를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도 됩니다. 구약에서 백성들이 소나 양이나 새들을 잡아서 희생시켜 제물 삼듯이 그렇게 드리는 일입니다. 나와 동일시 된 그 재물이 불에 타는 동안 내 자신의 생각과 꿈과 욕망이 완전히 소멸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의 슬픈 현실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이용해서 내 꿈을 더 성취하려는 아주 잘못된 신앙인이 이 세상에 참 많습니다.
신앙을 샤마니즘 으로 이끌어 가는 사람은 그 방법대로, 지식의 축척으로 여기는 사람은 그대로, 정치적인 힘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신앙을 정치적 힘의 도구로 사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유명한 사도바울 선생님은 갈2:20 후반절에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자신의 살고 있는 목적을 밝힌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을 하나 해 봅시다. 우리들은 정말 아무 조건없이 주님의 산제물 드리신 그 구속의 도리에 힘입어 그냥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릴수 있습니까?
이렇게 한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를 내세우는 일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는 일입니다.
24절에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일은 자신의 일에 자신이 공로를 세울것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여기에 신앙인의 힘이 있는데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합니다.
 
3.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24절)
십자가의 헬라어는 '스타우로스‘입니다. 이뜻은 두가지로
1) 사람이 사는 집 둘레에 뽀죽히 솟아나게 기둥을 박아서 거주지의 둘레로 세워서 의 형태를 가짐으로써 다른 사람이 침투하지 못하게 막는 일입니다.
2) 중범자를 공개적으로 매달아 죽게 하는 공개 처형때 ‘스타우로스’ 라는 용어를 사용 했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란 바깥으로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처다 보면서 모독하고 조롱하는 수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내면적인 상징으로는 그(예수님)가 수치를 당하므로 나와 나의 가정에 침투하는 마귀의 세력을 막아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성서백과 대사전 -성서교재 간행사- 7권 270p>
예수님은 우리의 가정에 이미 담을 세워주셔서 여러분의 각 가정으로 침투하는 마귀의 세력을 막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각자가 지은 죄는 조롱과 수치를 받아서 마땅한 것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 하시사 그 수치의 십자가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지시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더 이상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과 욕심을 일체 주님의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흥하고 나는 쇠하고 ><주님은 흥하고 나는 쇠하고 ><주님은 흥하고 나는 쇠하고 > 를 끊임없이 고백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이고, 이 삶이 바로 성숙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될때 그 사람을 통해서 주님이 확실하게 세상속에 증거케 하실 것입니다.
 
결론
선교: 우리교회는 금년부터 한푼이라도 아끼고 절약하여 한 달에 얼마되지 않는 헌금에서 20%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 집없이 방황하는 자들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궁핍에 시달리는 영혼을 건지기 위해 한국의 농촌과 맥시코 인디안과 생계유지에 심각한 어린이 들에게 음식물을 제공키 위해 아프리카에 사는 이름과 나이만 겨우아는 어떤 생명에게 우리의 가진 것을 나누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중앙교회가 여러사람을 많이 전도해서 교회가 커 지기 전에 여러분이 예수님 앞에 똑바로 서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우선되면 전도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번식으로 커지는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연합: 우리가 꼭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신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십니다.
작년 이맘때에 여러분에 저에게 은근히 연합회에 우리들이 참여되기를 원하는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막 태어난 우리교회는 아직 가입하지 못했고 1년이 지나서 연합회에 가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연합부활절 새벽예배도 주님의 부활을 개교회서 드리는 것 보다 일정한 지역에 이렇게 함께 모여 연합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아마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리라고 믿기에 이 일이 진행 된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지역에 믿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구원을 위해서 음식준비도 힘들지만 감당하여 연합회에 적극 참석을 하여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번식이 이루어 져야 할 것입니다.
번식이란 나의 생각과 믿음이 이지역에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중앙교회 교인으로 서의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개인적인 힘든 것을 참고 이기고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나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결론중 결론: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대로 갚으리라.”
 
 

                                      연자맷돌/이스라엘/촬영: 2005 서목사

               
 
 
 


                                   너희를 씻기지 아니하면
                                            요13:3-8
                 스프링필드중앙교회 (사순절 3째주)       3-11-12 서 정 길 목사
3절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절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절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6절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절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서론:
1981년 제가 목사 안수받고 처음으로 경북 경주 부근 청령교회 시무때 당시 전두환 정권 당시에 저희 교회 최 집사와 함께 국무총리 경주 방문시 월성군 경주시 약 100여명의 인사들을 초청을 받아 갔을 때 그 사람만 양복이 없어서 잠바를 입고 갔습니다. 큰 식당에서 건사하게 식사를 하고 악수를 한 후 집으로 왔는데 최 집사가 붕대로 손을 싸고 있었습니다. 국무총리가 자기손을 잡아 주어서 너무 귀해서 당분간 쓰지않고 보관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와 만났을 때 그가 아주 지체높은 사람이라면 손만 잡아 주어도 황공할 따름입니다.
 
1.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겸손을 가르치셨습니다.
4절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절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오늘 본문은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추정되는 곳에서 예수님의 최후 성만찬 식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본문에 비슷한 내용으로 눅22:에 보면 최후의 성만찬 식 장에서 제자들은 누가 새 메시야 왕국이 될 때 더 높은 자리를 차지 할수 있는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에수님의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오늘의 본문 말씀은 마23:11에 있는 말씀대로 “너희중에 큰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라고 하는 교훈을 몸소 실천 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모법을 보이신 것으로 보입니다.
자,, 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을까요? '그냥 겸손하게 살아라' 라고 말씀 하시든지 땅에다가 글을 쓰시든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시겠지만 제자들도 말이나 가르침이 먹히지 않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희들은 나와 헤이진 후에 여전히 교만할 것이다. 라고 인식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자신의 입지조건을 생각하고 또 자신이 매우 높은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재산이나 지식이나 자녀나 손자손녀 자랑을 한다고 해도 사실은 별것 아닙니다. 요즈음은 손자손녀 자랑하는 할아버지들이 많은데 어떤 모임에서는 “자랑을 하려면 돈을 내어놓고 하라” 고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버전은 하도 자랑을 막을수 없으니까 “돈을 줄테니까 입좀 다물어 주세요”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입지조건을 어떻게 생각 하셨을까요? 랍비? 선생? 하나님과 동등됨? 신적인 권위? 참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그런 자랑거리로 여기지 아니였습니다. 1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자가 보낸자 보다 크지 못하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알고 또 제자들을 알 때 육체를 따라 알지 아니 하였습니다. 다만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자’라고 고백 하면서 보냄을 받았으면 보내신 자의 뜻을 따라 행동 할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또 예수님의 보냄을 받은 자이고 저와 여러분도 보냄을 받은자 뿐입니다. 거기에서 더 높은 조건이 없는 것입니다.
예> 지금 한국에 대통령이 이명박씨 인데 이 사람은 이전에 서울 시장일 때 소망교회 출석 하였습니다. 그는 소망교회에 파킹장에서 자동차 안내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서울시장이라면 세상에 나가면 상당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교회에서는 그저 자신은 파킹장 안내원으로 보냄을 받았으므로 아무 생각없이 호르라기를 입에 물고 완장을 두르고 신호전등을 들고 그냥 파킹장 안내를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행동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보냄을 받은자가 보낸이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파킹장을 안내해도 부끄럽지 아니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고 남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어도 부끄럽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만 부끄러운 일은 무엇입니까? 죄를 짓거나 바리새인처럼 교만한 행동일 뿐입니다. 그 외에는 그 어떤 허드레 일도 부끄럽지 아니 합니다.
예>군대에 가면 인재가 참 많습니다.
-어느날 김병장이 대원들을 소집 시켰습니다. “여기 누가 피아노 전공한 사람있어!” 박이등병이 “예, 제가 사회에 있을 때 피아노 전공 했습니다” 하였다고 나섭니다. “너, 저기 가서 피아노 걸레질 좀 해라”
-며칠뒤에는 김병장이 또 막사에 들어가서 “여기 누가 미술 전공한 사람있어!” 고 일등병이 미술을 전공했다고 나섭니다. “잘 됐다. 너, 저기가서 발야구 하게 줄 좀 그려봐”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김병장이 또 막사에 들어가서 묻습니다. “여기, 누가 검도 전공한 사람있냐?” 강 이등병이 검도를 전공 했다고 나섭니다. “몇단이냐?” “네 2단입니다.” “야 이단도 검도냐 또 다른사람 없냐?” 이 이등병이 나섭니다. “네 제가 5단입니다.” “잘 됐다. 이리와 봐 이리와서 파 좀 썰어라.”
우리교회에서 한인봉사센타를 운영하자고 했는데 사실은 그 일이 이 지역에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가 팔을 걷어 붙이고 그들을 돕자는 뜻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이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맛볼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주일에 남자가 설거지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까? 아닙니다. 남자들도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이 스프링필드중앙교회에 보냄을 받을 자들입니다. 시장도 파킹장에서 안내를 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도 씻어 주었는데 우리는 남이 사용한 그릇 닦는 일을 못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팔을 걷어 붙이고 섬김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거지는 남자들에게 시켜 주세요. .

2. 십자가 지시기 전에 제자들과 예수님과의 매임을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를 씻기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을 보십시다. .
8절-“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여기 본문에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은 겸손을 가르치시는 것 외에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과 예수님과의 관계 문제입니다.
8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다.
8절“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 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써 제법 양식이 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당시 관습으로는 종이 주인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예법이기 때문에 주인 되시는 예수님이 종 되는 베드로 자신의 발을 씻는다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라고 말했는데 이 말이 일반적인 양식으로 는 적절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사건을 일반 도덕의 기준으로 그냥 두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발은 가장 빨리 더러워 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겸손의 교훈 이상으로 제자들의 죄를 예수님이 씻는다는 의미가 있고 영적인 사죄를 위한 텃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계실 당시에 유대교는 정하고 부정한 것을 구약의 방법대로 지켜 왔던 사람들이 꽉 차 있었습니다. 출산한 여인도 부정하다고 하였고, 각종 질병을 가진 환자들도 접촉하지 않고, 시체도, 특정동물도, 곰팡이도,,, 다으면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이것은 의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부정의 문제였습니다.
그러할 때 예수님은 모든 병자들과 부정한 사람이나 일들에 대해서 피하지 아니하고 접촉 하였습니다. 무덤 사이에 거하는 벌거벗은 미치광이를 예수님은 접촉하셨고, 열두해 동안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자도 예수의 몸에 손을 대었고 죄인의 대명사인 세리에게도 대화한후 그 집에 방문 하였습니다. 그래서 미치광이가 회복이 되어 정상인이 되었고 혈루병 앓던 여인이 혈류병이 고쳐지고 건강하여 졌고 세리가 회개하는 본연의 사람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세상은 육체의 질병만이 아니라 마음의 병 영적인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 세상에서 아무도 예수님의 텃치가 필요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들은 죄를 지은 그대로 이세상을 살고 있으며 그 죄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씻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세상에 스스로 자신의 죄를 씻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그 어떤 사람이라도 아담으로부터 이어져 온 근본적인 인간의 죄를 씻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람의 죄를 씻기실 수가 있으시고 또 씻겨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텃치가 필요합니다.
8절에 “상관이 없느니라”에서 “상관”은 헬라어에 “메로스”라는 단어가 사용 되었는데 이 ‘메로스’는 원래 ‘유산을 상속 받는다’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발을 씻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장차 받을 왕국참여를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예수님은 손으로 지금 사람의 발을 씻기지만 그 행동안에는 앞으로 예수님의 보혈피가 바로 사람의 흉악한 죄들을 모두 씻긴다고 하는 의미와 예고가 담겨져 있는 것이요 만약에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유산을 상속 받을수 없고 유산을 상속 받지 못한다면 이후에 예수님과 함께 하지 못하므로 예수님과 같이 여기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유산을 상속 받지 못하는 사람을 단순히 상속에 제외 된 것만이 아니라 슬픈 현상에 이르른다고 말씀 했습니다. 마태24:51 “--거기서 슬피울며 이를 갈리라”라고 했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이런 설교를 듣고 “나는 이가 다 상해서 갈 이가 없다” 고 하니 목사님이 “걱정하지 마세요. 그곳에 치과의사가 있어서 임플랜트를 해 줄 것입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성경에 유산을 상속받을 사람에 대해서는 눅 19:17 “주인이 이르되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 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유산을 상속 받을 사람에 대해서는 계시록 20:6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라고 말씀 했습니다.
그러므로 시몬 베드로가 거절하는 것을 예수님은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하는 것을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라고 하셨는데 이후란 바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하고 그 속죄는 현재부터 영원히 함께 함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또 우리들을 위해 희생양이 되신다는 암시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 1:29에 예수님께서 세레요한에게 세례 받으러 나오시는 것을 보시고 “보라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희생양이 되신 예수님이 희생양이 되심으로써 당신이 이땅에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을 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자세를 가진 것입니다.
 
결론
 
예>1974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74 엑스포로 대 전도대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27세 청년으로 그곳에 참석 하였는데 여의도 광장에 빽빽하여 앉을 자리가 없어서 나는 자리를 찾지못해 서성대었습니다. 그때 한 남자가 소리를 지르면서 지금 누가 앞에 선줄 아느냐? 조용기 목사님이 설교하려고 서 계시는데 어디 왔다갔다 하느냐?고 고함고함 질러서 나는 저 사람 천국갈 백성맞나 하고 한참 그 얼굴을 처다 보았습니다.
진정 전도집회 모였으면 촌에서 올라온 한사람을 자리에 잘 앉히는 것이 오히려 더 전도하는 것이지 자기 자리는 내어 주지않고 소리소리 지르는 자세로 무슨 전도 하겠다고 하겠는가? 하고 순수한 서정길 청년에게 심각한 도전이 되었습니다.
 
천국백성과 겸손 이것을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것이고 이것은 서로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 하지만 이 겸손을 마음에 새기지 못한다면----
다시 예수님이 발씻으시러 여기에 내려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냥 겸손이 아니라 희생양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희생을 하시면서
장차 함께 거할 천국으로 안내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파사데나 공원/2011.8 /촬영:서목사
 
  
                                      쉬운투쟁(사순절 2)
                                             롬7:14-8:3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3-4-12 서정길 목사

예>링컨의 두아들 윌리와 테드 사이에 싸움이 벌어 졌습니다. 옆집 아줌마가 무슨 큰 일이 벌어 진줄 알고 찾아왔습니다. 아줌마는 “아니,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링컨은 “네,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가 발생된 것입니다. 제가 퇴근 하면서 도너스 세 개 사왔는데 서로 두 개를 먹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긴 싸움입니다.” 그 아줌마 “어떻게 하면 좋지요” 링컨 “그러나 간단합니다. 내가 한 개 먹으면 됩니다.”
우리들에 생활에는 크게 혹은 작게 싸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싸움이 어떤 때는 작아 보이다가도 커 질때가 있고 또 커 보이다가도 어떤 때에는 아주 작아 지고 말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싸움을 할 때 가장 큰 적이 누구입니까? 네, 자기 자신입니다.
 
1. 힘든 싸움 (롬7:23-24)
가. 바울의 현실
바울은 지금 자기 자신 속에서 두 개의 싸움이 벌어 지고 있습니다.
23절-24절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3절 후반절 새번역-“죄의 법이 나를 포로로 만듭니다.”
아주 심각한 자기고민이며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나. 고민의 이유
그 고민과 그 싸움의 근본적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18절-19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이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내 속” “내 육신” 은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본성 곧 죄의 성향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에서는
"in my sinful nature"-"나의 사악한 성품" 이라고 했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지만 항상 어디엔가의 싸움에 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 지고 있는 그 힘은 내가 뒤늦게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 본래있던 사악한 성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상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이 없노라”-18절-
우리는 예수믿고 의롭다 함을 얻었으며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속 사람은 선, 곧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고자 하되 우리의 부패한 인간 본성이 자꾸만 이를 가로막고 범죄하게 끔 하는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내 자신의 내추럴한 본성의 힘이 너무 강하고 커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은혜의 힘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블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오늘 본문 말씀을 잘 보니까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서도 자신의 활기찬 신앙생활을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으로 돌아가 자신도 물론 그럴 때가 있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동시에 이세상에 살고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모두 약함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2. 지배의 원리 (롬7:25)
예>지난 주간에 한국정부가 유엔 인권 이사회에 북한 탈북자 들의 송환을 금지 시켜 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이유는 지금 많은 탈북자들이 송환되면 그곳에 생명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인터넷으로 탈북자 송환에 대한 금지를 요청하는 서명을 100개 나라 15만명이 사인을 했다고 합니다.
북한 주민이 북한에 있을동안 그 법과 제도의 권한아래 있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곳을 벗어나게 되어 다른 나라에 속하게 되면 북한의 법치를 벗어납니다. 또 한가지는 북한이 만약 서방이나 중국에서 새로운 법안이 그들에게 받아들이면 그 새로운 법안에 따라 북한 사람들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미국이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하면서 북한에 식량 지원을 하겠다고 하니 며칠 지나자마자 이제 또 중국이 돕겠다고 공개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사실 지원 이후에는 어느 단계에서는 통제 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주간에 미국과 북한이 서로 식량지원과 우랴늄 실험중단과 교환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앞으로 6자 회담도 가능하다고 하면서 한국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우주 만유인력의 원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구에 살고 있는 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힘의 만유인력의 법칙아래서 꼼짝없이 움직이게 됩니다.
우리는 지배의 원리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부터 지배를 당하면 그 안에서 통제를 받게 됩니다.
예>제가 오른손에 볼펜을 잡고 있으면 오른손의 통제를 받게 되고 왼손에 잡고 있으면 왼손의 통제를 받습니다.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 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여기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자신의 육신의 본성과 새로 접수한 하나님의 은혜, 이 두가지 중에 한곳에 머물러 있든지 아니면 확실히 소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와 육신의 힘의 통제를 받고 살아가든지 아니면 진정 내 속에서 나의 현재와 미래를 향한 원하는 것이 지배를 하게 될지가 문제입니다.

3. 해방의 원리(롬8:1-2)
저는 지난 주일에 결론부분에 첫째 용서를 구함 둘째 동일화 셋째 받아 들임을 말씀 했습니다. 둘째 동일화란?-새로운 것에 착 달라 붙는 것을 말합니다.
예>얼마전에 제 아들과 스카이피 전화를 하는데 자기가 결혼만 하면 행복이 쫙 펼쳐 질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오히려 신경 쓸 일이 많다는 겁니다. 저는 아들한테 말했습니다.
“지금 결혼한 캐롤라인이 내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드는 것은 조금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그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 빠른 방법은 이 사람이 내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꽉 굳혀야 된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전에는 육신의 법대로 살았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한 사이이기 때문에 육신의 법에서 해방되고 영의 법 예수 그리스도에게 꽉 붙어야 비로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탈북한 북한 주민이 가끔 제 3국에 가서 그 나라의 영사관 정문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가끔 TV에서 볼수 있습니다. 신분은 아직 아니지만 몸으로도 새로운 곳에 소속이 되는 순간 전에 지배했던 북한 나라법이 그를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북한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합니다. 만약에 북한이 새로운 문호를 개방하고 서방서계와 교류해서 핵 보유 위원회에 가입하고 새 나라를 이룩한다면 공산주의의 틀이나 주체사상이라는 시대에 맞지않는 이념에서 벗어 날 수가 있습니다.
예>이것은 사람이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동안은 대기권에 의한 끌어 당기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벗어 날수 없지만 만약에 인공위성을 타고 대기권 밖으로 나가면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벗어 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에 딱 붙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와 나, 하나님과 나, 말씀과 나, 예수 그리스도와 나, 성령과 나, 거리를 두지말고 딱 붙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기는 믿고 세례는 받았고 교회는 다니지만 거리를 두고 있다면 거기에 사탄이 항상 육신의 법을 따르라고 유혹을 할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해서 끊임없이 정죄하려고 덤벼 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지난주일 본문 1-2절
롬8:1-2“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결론: 용기 / 언제나 그리스도와 함께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새로운 성령의 법아래서 살겠다는 결심과 더불어 용기와 결단이 필요 합니다.
그 용기란 나의 육체를 쳐서 하나님 앞에 복종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향해서는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완전히 환영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올가매는 육신의 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잠자기를 아주 좋아 하는 게으름 뱅이가 있었습니다. 맨날 먹고 잠만 잡니다.
그는 하루는 청마루에서 잠을 자는데 도둑이 담을 넘어 오려고 머리를 내 밉니다.
“이 도둑놈이 들어오기만 해 봐라” 그 도둑은 청마루를 지나서 안방으로 들어 가려고 합니다.
“이 도둑놈이 안방에 들어가기만 해 봐라” 이 도둑이 안방에서 중요한 물건을 가진 보따리는 짊어지고 청마루를 지나 나갑니다.
“이 도둑놈이 대문을 열기만 해 봐라” 이 도둑은 대문을 열고 서서히 사라 집니다.
“이 도둑놈이 다시 오기만 해 봐라”
이 게으름 뱅이뿐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위대한 결단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나의 죄성과 나쁜 습관들은 나를 옥조아 매고 나는 거기에 굴종하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듣고 내가 할수 있는 작은 것이라도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안에서의 충만함을 경험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딱 붙어 있으면 마음의 싸움은 쉬운 투쟁입니다.
                                                                                                  할렐루야!!
                                          요세미티 2010.11/촬영:서목사




죄의 결과와 회복(사도신경 강해 12 및 사순절 시작)
롬8:1-11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2-26-12 서정길 목사
본문: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서론:
예>. 미국에 어떤 사람이 일요일에 등산을 가려고 하던 중 라디오 방송에 목사님의 설교가 나왔는데 죄에 대해서 설교하였습니다. 그런데 너무 심하게 이야기 하는 바람에 이 사람은 마음이 괴로워서 등산 갈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 목사를 고소했다고 합니다. 고소내용은 “왜 아침에 방송을 통해서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느냐?” 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사람들은 듣기를 원치 않습니다. 많은 말중에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지적을 해 주면 되는 것이지 죄를 단도 직입적으로 말할 필요 있겠느냐? 하는 것이 요즈음 사람들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죄에 대해서 좋은 단어만 나열 해 달라는 것은 내가 병 들었지만 아프지 않고 괜찮을 거라고만 말해 달라는 것과 같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 듣지 않겠다는 말은 망가지는 인생을 고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늘 사순절 시작되는 날로써 사도신경 고백중 12번째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를 강해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 요한복음 14:처럼 로마서 8장은 성경 전체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를 드러낸 것입니다. 즉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1. 단어들-죄, 육신, 영, 그리스도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단어들을 조금 조사 해 봅시다.
1) 죄(6번-정죄 포함)
2) 육신(9번)
a.영과의 반대개념(6절-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b.하나님과 원수(7절-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3) 영(11번-성령 포함)
4) 그리스도(5번)
이 네가지 단어가 오늘 설교에 참 중요한 낱말이 되겠습니다. 이 네 개의 단어를 묶어서 설교 전체를 한 문장으로 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a. "죄를 지은 육신이 성령의 인도로 예수믿게 되었다."
b. "성령의 인도로 예수를 믿게되어 죄를 지은 육신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
 
2. 죄의 네가지 상태-애굽의 종 노릇때를 그리워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죄성)-
예>샌프란 시스코에 조카집에 어떤 부인이 한국에서 다니러 왔습니다. 그 조카는 모처럼 이모님을 모시고 그 지역에서 잘 알려진 월남식당에 모시고 갔습니다. 처음에는 그분이 음식을 이것 저것 차근차근 먹다가 나중에는 모두 한군데 넣어서 섞어서 푹푹 퍼 먹더라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은 어쩔수 없었나 봅니다. 비빔밥을 먹던 습관의 근본을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근원적으로 아담으로부터 받은 죄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개인은 미개인 모습으로 문명인은 문명인 모습으로 모양만 다를뿐 감출 수 없는 죄성을 드러내고 맙니다. 아무리 고상하게 자신을 감추어도 죄성이 있고 그 죄성으로 말미암아 각자 모양은 다르지만 죄가 들어나고 마는 것입니다.
죄의 4가지 상태 -도둑질, 간음, 살인, 불효, 탐심, 미움, 이런 것들입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a.율법을 알고도 행할 능력이 없는 육신을 입은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부러 그렇게 하지는 않을지라도 어떻튼 뭐가 뭔지 잘 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는 환경을 통해서 배우지만 기본적인 씨는 타고 나옵니다.
일찍이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 3절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
8장8절을 통해서 말씀 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결국 이세상 모든 사람을 향한 지적이 되겠습니다.
b.과거에 즐거웠던 것만 기억하고 오늘과 내일을 가늠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
예>구약 성경 민수기 11장 속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들을 잘 분석 해 보면 우리자신들의 속 내면을 잘 파악해 낼 수 있습니다. 저쪽은 고역으로 살았고 지금은 자유의 몸이 된 것과 미래에 새땅에 살 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진정한 유익 보다 는 일시적인 유익, 과거의 즐거웠던 것, 그래서 그 즐거움을 다시 찾으려는 어리석음을 말합니다. .
민11:5 “우리가 애굽에 있을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 나거늘”
c.현재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예>여성가수 휘트니의 장례식에서 보디가드 함께 나온 영화배우 ‘캐빈 코스트너’가 나와서 말하기를 휘트니가 영화 촬영을 시작할 때 세가지를 질문했다고 합니다.
1)내가 정말 잘 하나요? 2)내가 정말 예쁜가요? 2)사람들이 정말 나를 좋아할까요?
그런데 이 질문은 정말 이세상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평범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만약 그리스도인 가수라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1)나의 재능을 주신 하나님 감사 합니다. 2)처음으로 주연을 맞아 연기를 하오니 주여 도우소서 그러나 휘트니 휴스턴이 죽기전에 부른 노래는 “예수 사랑 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였다고 합니다. 저는 그녀가 좀더 일찍 예수를 믿었으면 좋았으리라고 생각 됩니다.
그렇습니다. 죄성을 가진 그대로의 삶은 그렇게 죄인같은 삶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행할수 없는 이 육신, 과거에 달콤했던 것만 기억하고 또 그것을 찾아가는 것, 현재의 은혜의 상태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이 세가지 사실을 회복하거나 고치지 않은 상태에서 빠져서 시간이 흘러 간다면 그 인생은 암흑의 구렁텅이로 빠져가게 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올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참 이상한 것입니다. 아니 사람들은 정말 단순하고 어리석지 않습니까?
민11:4-6 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두가지를 잊어 버렸습니다. 첫째는 옛날 애굽의 종노릇 할 때 남편들이 감독들의 채찍에 맞는 것과 자녀들이 학살 당했던 그 때를 잊어 버리고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홍해를 갈라 백성들을 무사히 건저주신 기적들과 현재 하나님의 계속되는 은혜를 잊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민11:5 “우리가 애굽에 있을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 나거늘”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탐욕에 의해서 이제 하나님이 베푸신 만나에 대한 경시로 나타 났습니다.
민11:6 “우리 정력이 쇠약하니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이 만나 외에는---얼마나 경시 하는 것입니까? 만나에 대한 감사 보다는 만나밖에는 먹을것이 없다는 불평입니다.
d. 전체나 모두가 아닌 나 자신 개인의 유익에 빠져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외교적인 성과가 많았습니다.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암살했고, 알카에다 전략가 안와르 알올라키도 사살했고, 리비아 내전을 종식했고, 이락크 주둔 미국 철수 계획확정했고, 등등 공적이 컷지만 생각보다는 그것이 내년 대선에 큰 호재로 여기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미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적인 성과보다는 현재 당면하고 있는 국내 경제 문제현안에 더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 그 엄청난 희생을 한 911 사건을 벌써 잊어 버린 것입니다.
이들의 생각과 행동들이 알게 모르게 저와 여러분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사순절 첫주일에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사도신경 12번째를 외울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해결점-
예>노무현 전 한국 대통령이 부정부패 금품 등등으로 조사를 받아야 할 즈음에 그만 산에 올라가서 낭떠러지에 떨어 지면서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의 정부가 너무 혹독하게 다루었다는 설도 있지만 아무튼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달아진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 가 심판대에 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물론 가족에게도 심문은 없어지게 되고 모든 죄가 제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가 변호사였기 때문에 법을 잘 알았기에 자살함으로 모든 죄가 그 죽음안에 뭍혀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죄에 대해서는 해결점이 있습니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법적인 용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죄성을 가지고 있고 또 죄를 지은 사람일찌라도 그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심판받지 않고 넘어 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안에서 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길이 필요 합니다.
1)용서를 구함-자신의 잘못을 누설하고 고백하고 십자가 앞에 서서 사면을 요청하는 일입니다.
롬8:1“그러므로이제그리스도예수안에있는자에게는결코정죄함이없나니
요일1:8-9만일우리가죄없다하면스스로속이고또진리가우리속에있지아니할것이요만일우리가우리죄를자백하면저는미쁘시고의로우사우리죄를사하시며모든불의에서우리를깨끗게하실것이요
2)동일화-예수 죽으심과 나의 죄를 동일화 하는 것입니다.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10절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3)받아 들임- 육의 삶에서 영의 삶으로 새로운 삶의 길의 제시 받아서 죄의 틀에서 영영 벗어나 새로운 영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 새로운 생활방식을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적 공황상태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롬12:2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 하도록 하라”
 
                        율법으로 부터 해방/2005/이집트 시내산에서/촬영:서목사
                        
                                           길, 진리, 생명
                                              요 14:1-6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2-19-12 서 정 길 목사 
                                           
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5.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서론: 요한복음 13장에는 선생 되신 예수님께서 대야에 물을 담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제자의 발을 씻어주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은 유대 전통에서는 찾아보기 힘든일입니다. 왜냐하면 원래 상대방의 발을 씻어주는 사람은 대체로 그 집의 종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면서 그들과의 관계를 마음에 더 확인하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일은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저들의 발을 씻으면서 저들의 앞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어떤 행동들을 할 것인지 그들의 할 일들을 알게 됩니다.
가롯유다는 배신을 하여 예수님을 팔아 넘기고, 베드로는 모닥불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 부인 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들에게 장차 너희들이 나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모두 말씀 합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은 지금 의기소침해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침울한 현장에서 방향을 바꾸어 요한복음 14:1에 다음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얼마나 위로와 은혜가 풍성한 말씀입니까?
이어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래서 그들은 당할 어려움이나 침울한 생각 보다 그 이후에 있을 미래를 바라보고 희망을 갖게 됩니다.
 
1. 우리에겐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으며 또한 예수님으로 인해서 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과거는 길지 않고 성령의 인도로 꿈같은 미래는 한없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과거가 길지 않으므로 어떤 전통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와 비젼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다시 말한다면 우리교회는 몸이 가벼운 교회입니다. 그러나 가볍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파워풀한 영향력을 가지고 세상속에 나갈수 있는 교회입니다.
저는 작년에 교회요람을 작성하는중 하나님의 성령이 교회 비젼을 세우도록 이끄셨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과 소망을 가지고”
오늘의 본문 말씀 6절을 보십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요14:6>
예>제가 한국에 있을 때 교회 잘 나오는 남편이 교회 나오고 싶어도 발이 아파서 교회 오지 못한다고 하길래 심방을 갔었습니다. 갔더니 남편이 발을 내 미는데 마치 화상을 입은 것 같기도 하고 썩어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그의 대답은 일평생 40년 동안 기관사로 기차를 몰았다는 것입니다. 기차도 악세레다가 있어서 그 악세레다를 40년동안 밟고 서울 부산 광주 등등 곳곳에 쉽게 말해 기차 운전사로 안 가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귀한 발을 붙잡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참 귀한 발, 수많은 사람을 태우고 대한민국을 40년 동안 다닌 사람 하나님 고쳐 주세요 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많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각자 사람마다 각자 자기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기 있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한 사람들을 처다보면서-, 어떤 사람은 많은 명성을 떨친 사람들을 처다 보면서-, 그들의 길을 마치 자기의 길처럼 걸어가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쾌락만을 추구하면서-, 어떤 사람은 별 목적도 희망도 없이 그냥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묻는 다면 여러분은 무슨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가야할 길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이 말씀 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다.” (요14:6) 라고 했으므로 우리는 그 길을 갑니다.
성경 속에 “나는 --이다.” 라는 말씀이 가끔 나옵니다. 원어로는 “에고 에이미” 라는 말씀인데 우리는 성경 요한복음 안에서 종종 찾아 볼수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목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포도나무다.’
와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에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 합니다.
여기 ‘길’과 ‘진리’와 ‘생명’은 서로 관련이 있습니다. 진리와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2. 배워 알고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예>제가 전에 목회하던 목회지에 한 집사님이 시립도서관에서 40년을 일한 사람입니다. 도서관의 흐름을 잘 몰랐던 제가 한번 방문했더니 그 큰 도서관을 단 몇분안에 전제 흐름을 이야기 합니다. 컴퓨터실과 오래된 책들이있는 곳, 각종 논문들이 있는 곳, 도서의 종류를 각 나라별로, 시대별로, 그리고 기증하는 방법과 도서관 전체를 사용하는 방법 등등을 아주 쉽게 설명할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아니라면 그 큰 도서관에 과연 무엇들이 있는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전혀 몰라 어리둥절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집사님이 알려 주셔서 쉽게 그 도서관의 운영과 사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길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하나님께 갈수 없는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도덕이나 철학이나 재능이나 돈으로도 하나님께로 갈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심지어는 그 어떤 종교로도 하나님께 갈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또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큰 구렁텅이가 된 곳에 십자가가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오직 예수님만 길이십니다.
사도행전 4: 12에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다른 이로는 구원을 얻을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다소 서운하겠지만 석가도 아니고 마호멧도 아니고 공자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집에 함께 거하시다가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인생길에 안내자이시고 우리의 마지막에 도달할 천국의 안내자이십니다.
우리는 천국에 오묘한 사실들에 대해서 지식도 상식도 없지만 예수님만 따르면 쉽게 천국백성이되고 천국에 살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40년이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오래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집에 대해서 알고 안내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중보역할을 하기에 아주 적절할 뿐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그 일을 하실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고 그분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마11:29에 의한다면 그와 멍에를 메고 배우는 것입니다. 멍에를 멘다는 것은 두 마리의 소가 밭을 가는데 두 마리가 서로 걸어가면서 어긋나기 때문에 나무로 만든 작대기로 두 마리를 묶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다른 길로 갈수 없게 하는 것이 멍에입니다. 한 소가 오른쪽으로 가면 다른 소도 오른쪽으로 한 소가 왼쪽으로 가면 다른 소도 왼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우리 각자가 멍에를 메고 가는 것입니다. 그 길은 바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길이 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우리교회는 이것을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이 진리의 말씀을 저버리고서는 교회의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고 이것을 무시하고서는 교회가 아닌 사람들이 모인 사회 친교 집단 social community 집단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확실하게 고백하며 그에게 마음을 다하여 배우며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도적 전승을 가기고 세상에 나아가는 교회가 되고저 한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 믿음을 가지고 모이고 흩어지는 일들이 계속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
예>지난 화요일에 짐(Gym)에 갔더니 한 아버지와 중3쯤 되어 보이는 아들이 농구하러 왔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농구하는 모습을 보고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1)아버지가 먼저 농구를 하고 아들은 구경합니다.
2)아버지가 공을 던저 주며 이렇게 넣어라고 지시하니 아들이 바스켓에 공을 넣습니다.
3)아버지가 방해를 하니 피해 다니면서 바스켓에 공을 넣습니다.
우리가 길이라고 할 때 예수님이 먼저 그 가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유치원 학생이나 초등학생처럼 그 분을 자세히 바라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진리와 생명의 길로 인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학교과 고등학교에 입학을 해서 무조건 믿습니다 라는 단계에서 진급해서 그의 가르치심에 ‘아멘’ 하면서 배우면서 갑니다.
그 다음에 또 진급해서 대학생과 대학 원 학생이 됩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앞에 방해물이 있어도 그 방해물을 어떤때는 피하고 어떤 때는 넘어가며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방해 공작이 우리앞에 있다고 할찌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 연구하는 중에서도 방해물을 넘어서, 기도도 훼방되는 요소들을 넘어서, 서로 열심히 사랑하는 것도 상처와 오해와 불편함을 넘어서서, 선교하는 일에도 나의 편리와 편의와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넘어서서 나아갈 때 찬란한 태양이 떠오름을 맞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시에틀로 가는길 /2010/서목사 촬영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사도신경 강해 11)
                                   행2:42-47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2-12-12 서정길 목사
 
서론:
 
한국은 하루에 42명이 자살하므로 세계에서 자살 1등국이라고 합니다. 그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 실정인데 이만큼 한국인들에게는 특별한 문화나 생활패턴으로 재 정립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자살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 하느냐 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1400명 정도로 조사한 결과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 3가지가
1)경제적인 문제 2)과중한 업무 3)인간관계 라고 했습니다.
이 스트레스를 잘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데---
 
1. 거룩한 공회와 선교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후반부에 가면
The Holy Catholic Church 거룩한 공회-창립 1주년 예배때 말씀 했습니다.
우리교회의 사명 마지막 부분인 mission을 했고 지난주일 식사후에는 우리교회가 약 20% 정도를 지역 및 해외로 선교하는 선교비 책정을 했는데 이 책정은 교회 개척이후 아직 교회 예산 편성을 하기 전에 선교비 책정부터 먼저한 이 지구상에 아마도 찾아 보기 힘든 주님이 기뻐하는 교회였으리라고 생각 됩니다.
 
남편들의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남편 1 며칠전 마누라 눈에 모래가 들어가서 치료비로 15만원이나 날렸지 뭔가
남편 2 에휴 ~~ 겨우 15만원 가지고---그건 약과야 며칠전에 모피코트가 우리 마누라 눈에 들어갔는데,, 2300만원 날렸어
 
우리가 선교하기 위해서는 금식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절약하고 아끼고 마음을 낮추어서 고급이나 명품 보다는 실리적이면서도 검소한 생활패턴을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50불 짜리 옷이나 물건이 1년이나 2년이 지나고 나서 20% 세일을 한다면 그것을 구입하고 나머지 10불 혹은 20불을 선교헌금 할수 있고, 한달에 마켓에 6번을 간다면 5번이나 4번으로 하고 홀쭉한 배를 움켜쥐고 선교헌금을 할 수 있고 각종 음식과 물건을 좀더 아끼고 절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기도제목은 우리교회가 지구상에서 가장 열심히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희망합니다.
 
그런데 선교는 막무가내로 뜨거운 열정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 기초작업이 필요한데 그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초대교회와 같은 생활패턴과 마인드가 필요 합니다.
저는 우리교회 주보 제일 위에 우리의 목표를 “사도적 전승을 잇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사도적 전승이란 말이 좀 해석이 안되면 쉬운 표현으로는 “초대교회를 닮는 교회”라고 해 볼수 있습니다.
닮는 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부모를 아이들이 닮습니다. 얼굴이 닮고, 생활습관도 닮습니다. 나중에 그렇게 하노라면 생각하는 것도 닮습니다.
 
  2. 성찬예식에 관련된 성도의 교제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는 고백이후에 이어서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는 예배드리고 밥을 같이 먹으면서 성도의 교제 하는 것은 굳이 예배시간에 고백같은 것 하지 않아도 저절로 잘 되고 있다고 말하실지 모르겠지만 이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고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성격과 성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성미급한 사람 순위
9위-전자렌지 동작 버튼 누르고 돌아가는 접시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
8위-사탕먹을 때 처음에 조금 빨아먹고 금새 씹어 먹는 사람
5위-노래방에서 자신이 노래 빨리하고 싶어서 남의 노래 중간에 자르는 사람
3위-컵 라면 먹을 때 물 붓고 3분을 못기다려서 두껑열고 계속 젓가락으로 휘젓는 사람
2위-마켓에서 짧은 줄 찾느라고 이리 저리 왔다갔다 하는 사람
1위-상대방이 통화중인데 전화 안받는다고 계속 3번이상 전화하는 사람
 
우리가 고백하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에 이 “교통”이라는 단어가 잘못되지는 않았는데 오랫동안 traffic 이란 말로 이해 되어왔기 때문에 우연속에 이 고백은 자동차가 왔다갔다하는 도로가 생각 납니다. 그렇다면 그 생각을 고치기 위해서는 교통을 교제라는 말로 좀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제라고 하는 말도 상당히 세상적인 용어에 익숙해 져서 무슨 같이 밥먹고 화투치고 윳놀이하고 산이나 들로 놀러가고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다분히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제를 영문에는 The Communion of saints 라는 영어단어를 좀더 바르게 번역해 보면 좋겠습니다.
the communion은 성찬예식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교회는 매월 성찬예식을 합니다. 그런데 성찬예식은 우선 그 기원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베푸신 성찬예식을 생각하여야 비로소 참된 성찬예식을 알수 있고 그 참된 성찬예식을 알아야 비로소 성도의 교제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수 있습니다.
 
성찬예식을 두가지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이고 둘째는 제자들 저희들의 관계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성찬예식을 통해 예수님과의 관계가 확실시 되고 그다음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받아 먹는 제자들이 한 상에서 한 떡과 한 포도주를 받아 마시는 관계라고 할 때 그 제자들과의 관계는 생명적인 관계로 서로가 서로를 완전하게 서포트 할 수 있는 관계로 목숨까지 서로를 위해 내어 놓을수 있는 관계이어야 했습니다.
이런 일들의 하나의 캐이스는 역사속에서 찾아 볼수 있습니다. 아마도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 정권때에 그리스도인끼리 서로 고통을 나누면서 정보를 교환하며 서로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그런 일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끈끈한 관계가 바로 이 커뮤니온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냥 예배 마치고 맛있는 식사를 하자라는 단순논리에서 벗어나 이 식사를 성찬예식이 아니라도 보이지 않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밥상의 주인이시고 그리고 거기에서 밥을 받아 먹는 한 형제자매로써의 관계를 다시 인식하고 초대교회와 역사속에 믿음을 지키고 끈끈히 믿음의 힘을 지켜나간 믿음의 선조들의 형태를 이어 나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여기 “우리”라는 말씀은 요한과 다른 사도들, 그리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한 다른 신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단순한 입술로 이야기 하는 것만 아니라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 사이에 서로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라고 해서 모든 교회가 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라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 같은 교회는 진정한 주의 만찬과 는 전혀 거리가 먼 광경을 연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교회는 자유인이 있었고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자유인들이 노예와 함께 예배 할수 있는 것은 당시 시대를 봐서는 상당한 진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부족한 것은 바로 예배 이후에 나타난 교제하는 일이 었습니다.
 
 
자유인은 지체높은 사람도 있었고 고관도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체로 부유했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그릅은 노예그릅입니다. 노예들은 형편이 어려워서 자신들이 집에서 먹는 문제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을 준비 해 오는 것을 보면 자유인들은 맛있는 것을 많이 가져올 수 있었지만 노예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유인들이 큰 마음을 가지고 음식을 많이 준비해서 가난한 노예들에게 맛있는 것을 제공하면 되지 않겠느냐? 라고 생각할수 있겠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고전 11:20-21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이는 시장하고 어떤이는 취함이라”
그러니까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따로 먹었던 것 같고, 또 가난한 사람들은 남의 집에 일해 주기 때문에 제시간을 맞추기 힘들어 늦게 도착했고 부유한 사람들은 반대로 일찍 도착해서 부유한 이들은 자신들이 가져 온 것을 먼저 먹어 버려서 저희들은 배부르고 늦게 온 가난한 사람들은 배고팠다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는 지금 우리교회 형편보다 훨씬 못합니다.
그래서 고전 11:22 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하나님의 교회를 없신 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라는 질문입니다.
 
사람관계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동물이나 기계는 변동이 없지만 사람은 변동이 심합니다. 강아지는 목숨걸고 주인을 따르기 때문에 사실 쉽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기기계나 각종 제품다루는 일은 보턴만 누르면 내가 사용하고 싶은 쪽으로 사용을 하다가 낡으면 버리면 그뿐이지만
사람은 헤어져도 마음에 계속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이 남아 있습니다.
또 사람은 시시때때로 생각이 달라지고 이익문제가 걸리고 감정이 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고 불이익을 당할때는 돌아서서 원수가 되고 이런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사람관계는 힘든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올바르게 지속적으로 주님이 기뻐하는 쪽으로 갈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3. 사도행전 2장에 따른 성도의 교제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교제와 그리고 지속적인 교제를 가질수 있는 힘은 열심보다는 지식과 방향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교제해야할 이유를 바로 아는 것이고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이 어디인가를 알 때 이것은 지속성을 가질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행전 2장에서 두가지 그 해답이 나옵니다.
해답의 첫째 단어는 “성령강림”입니다.(행2:2 -4 "홀연히---성령이 말하게 하심을따라")
이 성령강림을 경험하고 구원에 이르는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논리나 도덕성이니 교육 즉 가르침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각자 심령속에 강하게 역사하여 그 힘으로 뭉쳐지는 교회 공동체일 때 거기에 비로소 The Communion of saints 가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되고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는 공동체로 살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단어는 한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행2:17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모든 사람들이 성품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특질이 같은 것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은사가 같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같은 것은 한 소망입니다. 그것이 어떤 존귀한 일에 대해서 지속성을 낳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왜 존재하는 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모이고 있는가? 우리의 사명은 무엇이고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은 과연 무엇인가?를 알게 될 때 우리의 관계성은 지속성을 가질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에 따라 살려고 하는 목적과 방향이 같기 때문에 서로가 오해나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 그때그때 고쳐가면서 교회 공동체를 다스려 나갈 수가 있습니다.
  
결론
여기에 네가지 지침을 볼수 있습니다.
첫째는 모이기를 힘씀(행2:46-“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둘째는 사도의 가르침(행2:42-“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교회생활의 전반적인 것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의 가르침
셋째는 떡을뗌(행2:42,-서로 교제하며 떡을떼며, 46절-집에서 떡을 떼며)
넷째는 기도(행2:42-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여러분이 기도할때는 나 자신은 물론, 서로상대방을 위한 기도가 지속될 때 같은 꿈을 꿀수 있고 같은 방향을 알수 있고 나약한 부분을 서로 채울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강력한 원동력을 가질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받으신 이스라엘 요단강/촬영: 2005년 서목사

                             진정한 금식(선교전략 세우는 날)
                                      이사야 58:6-12
                        스프링필드 중앙교회    2-5-12 서정길 목사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 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 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 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너 심정이 동하여 괴로워 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 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1. 달콤한 조건
6절7절 x 그리하면 = 8절 9절
여러분, 다음의 말씀은 듣기 좋으십니까? 듣기 싫으 십니까?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 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 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이 말씀은 8-9까지 본문 말씀인데
여기 8절에 들어가면서 “그리하면--” 이란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그리하면” 이란 이전 구절에 있는 말씀대로 살면 이렇게 해 주겠다는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전 구절은 무엇입니까?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 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이 말씀은 6-7가지 본문 말씀입니다. 이 조건에 응하면 8절 9절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에 많은 부분에 자신이 중심에 있습니다. 이것은 원래 신앙생활의 모습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제1순위, 둘째는 당신, 그리고 셋째가 나 입니다.
그 중에 당신이라고 할 때 다분히 나보다 어려운 사람, 나보다 더 힘든사람, 나보다 더 아픈사람, 나보다 더 약한 사람,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 나보다 더 고독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많은 부분에 곤궁한 자들에게 관심 가질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출22:21-“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이었었음이니라.”
제가 아는 어떤 한국 사람은 어느날 직장에서 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미국 백인이 자기보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한국 사람은 담대합니다. 뭐라고 했겠습니까? “너가 유럽으로 돌아가면 나도 내 나라에 돌아가겠다.” 라고 했답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사실 주인이 따로 없습니다. 서로서로 모두 이세상에 나그네 인생인데 누가 누구를 압제하며 누가 누구를 학대 할 수 있겠습니까?
레19:10-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희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기’는 참 유명한 그림입니다. 만종은 노을지는 저녁에 이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종소리가 울릴 때 부부가 함께 일을 막 마치고 잠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노동의 만족과 가정을 표현한 멋진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이삭줍기는 역시 다른 이의 밭에서 룻기에 나타난 룻처럼 이삭을 주워서 가족들의 저녁을 준비할 수 있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모두 노동, 가정, 그리고 이웃과의 나눔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신10:18-19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시41:1-2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보상
잠14:21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개역개정)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2. 조직에서 행동으로.
교회 헌금은 이세상의 돈과 조금 다릅니다. 세상의 돈은 모아서 더 넓게 늘이고 사업을 확장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돈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헌금은 곧바로 하나님이 선한 사업에 사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회는 재산이 모아지게 되면 그때부터 마귀가 틈을 타고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 돈은 잘 사용할 때 하나님이 그 행동을 통해서 번성을 허락하십니다.
물론 예치금이 좀 있어야 혹시 무슨 급한 일이나 상황이 어려워 질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지만, 사실 여기서 좀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교사업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또 지역 선교와 세계선교를 위해서 재정을 지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교회는 번성해 나가기 시작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조직기구가 아니라 행동하는 기구입니다. 어떻게 조직 되었느냐 하는 문제 보다 어떻게 행동하는 교회인가가 중요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각자가 지금 개인적으로 어떤 아프리카에 굶어 가는 어린이를 위해 어떤 기구에 헌금을 하고 있다면 그것을 교회로 헌금 하여서 교회에서 그 단체에 헌금을 하게 되면 개인이름이 드러나는 것에서, 교회이름이 드러나고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빛이 나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빛이날 때 내가 빛이 난다는 사실을 기초로 해서 선교사역에 이바지 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절약과 동참
[ 정치인과 개의 공통점]
1)가끔 주인도 몰라보고 짖거나 덤빌 때가 있다. 2)먹을 것을 주면 아무나 좋아한다.
3)무슨 말을 하든지 개소리다. 4)자기 밥그릇은 절대로 뺏기지 않는 습성이 있다.
5)매도 옛날 버릇 고친다. 6)족보가 있지만 믿을 없다.
7)미치면 약도 없다.
정치이야기를 들으면 항상 어수선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땅에 좋은 정치가 참 필요한 세상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가 정치학을 나와서 좀 좋은 정치를 하기를 바랐지만 1년 캠페인 회사에 다니다가 신학공부를 하게되어 정치를 하지 않게 되어 참 다행으로 생각 합니다.
지난 11월에 미국과 한국이 FTA “한미 자유 무역 협정”이라고 하는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은 상호 이익을 가지자고 하는 통상조약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일을 야당에서 반대하자 여당에서 “날치기 통과”로 결정을 했고 그 과정에서 회의장 안에서는 국회의원이 채류탄을 터트렸고 서울광장에서는 항의하는 데모가 일어났습니다.
문제는 한국과 미국이 서로 통상을 하는 것은 서로의 이익을 가지자는 것인데 원래 서로의 이익이란 정확하게 선을 긋기가 어렵습니다. 실제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어느 상황에서는 이쪽이 어느상황에서는 저쪽이 조금 유리한 일이 됩니다. 그래서 항의 집회가 일어나게되고 결국은 이 조약은 우리가 더 불리하다라든가 아니면 우리가 더 유리 했다라든가 하는 손해 이익의 문제가 남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저울에 50%: 50%의 이익을 나누어 달아 가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고 나서는 이익과 불이익의 현상이 남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호혜(互惠)” 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서로 호’ ‘은혜 혜’ 자로 쓰입니다. 이 말은 “서로 도와서 편익을 주어 은혜를 끼치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Reciprocity 로써 “조약을 맺어서 나라가 서로 통상상의 균등한 이익을 교환하는 조약” 을 말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만든 호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얼마나 서로 유익이 될지 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전혀 다릅니다. 나의 것을 상대방에게 그냥 주는 것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 구석에 남은 곡식을 더 이상 줍지않고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남겨진 곡식을 통해서 허기를 채웁니다. 부자가 사회에 많은 돈을 환원해서 사회 구석 구석에 노인이라든가 병든자라든가 수입이 전혀 없어서 배고프고 딱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유익을 조금 얻게 됩니다. 그렇게 하게 되면 그들의 어려운 일을 조금 더 나은 사람들이 맡아서 보충하게 되면 그 다음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든지 남을 도운 그 사람을 유익하게 해 준다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조금쓰고 아껴쓰고 먹을 음식을 금하기 까지 해서 아껴 다른 이에게 보급을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이 모두 갚아 주신다는 원리입니다.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개역개정)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본문 10절. 주린자에게 너 심정이 동하여 괴로워 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 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절.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뻐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저와 여러분의 생활을 조금 더 절약해 보는 것입니다. 50불짜리 물건 구입하고 싶을 때 메이커가 조금 다르지만 40불짜리로 약간 싼 것을 구입합니다. 그리고 10불을 선교헌금 합니다. 한주일에 두번 시장보던 것을 한번으로 줄여보고, 물건들을 재 활용하고 옷은 유행이 지난 것으로 구입하고 심지어 어떤 교회에서는 선교헌금을 위해서 깡통을 줍는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마도 일회용을 쓰기를 중단하고 노력해서 그릇이나 개인 컵을 사용하면 공해추방에 일익도 담당 하지만 소비도 조금 줄이게 되어 거기에서도 선교헌금이 나올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금식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금식을 많이 해 보았으므로 금식에 대한 유익을 압니다. 금식을 잘 하면 건강에 아주 유익합니다. 질병을 고칠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진정한 금식을 일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
금식함으로 그 절약된 것으로 가난한 자를 돕자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심정이라면 진정한 가난하고 어려움을 당한자 배고픈자들을 도울수 있으리라고 생각 됩니다.
저는 지난번 교회에 부임하면서 전교인 선교회원 되는 것을 홍보하고 설교하였더니 150명 교인에 154명이 선교회비를 동참 하였습니다. 이유는 배 안에 있는 애기까지 하라고 권하였더니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1년에 약 4만불을 선교헌금 하였습니다. 그리고 건축을 하였습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선교를 참 많이 하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2008 맥시코 산틴틴 선교중/촬영: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