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를 등진사람
본문:
수7:16-26
수7:6-7을 보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재를 뒤집의 쓰고 한탄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의
패배 원인과 그들중의 한 사람의 범죄한 사실을 말씀 하셨다(수 7:11-12) 그 말씀을 듣자 매우 황당했던 지도자 여호수아는 결국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족집게 찝어 내듯 범죄자를 찝어 내자 유다지파-
세라족속-삽디가족-세라의 아들-
삽디의 아들-갈미의 아들-아간이 뽑혔다.
여호수아가 아간을 문초하자 모두다 누설 하였는데 현장을 가보니 아이와 전쟁하기 바로 직전 여리고 성을 칠 때
하나님이 금기 시킨(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에게 바친 물건-외투한벌과 은 이백세겔 과 금덩어리 하나)
것을 도둑질 하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나는 여기서 아간이 세가지를 등졌다고 생각된다.
첫째가 그는 자기 양심을 등졌다.
양심은 하나님이 사람 각자에게 주신 것으로 자기 인격을 정비해 줄 가장 가까이 있는 컨트럴 센서이다. 이것을 무시하고 등져 버릴 때 자신에게는
고통이 시작된다. 그 고통의 시작이란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게 되고 그리고 인격과 삶이 흔들리고
망가지게 된다. 사람이 어떤 이익이나 욕심이나 욕망에 이끌리게 될 때 이 양심이 작용하게 되는데 그때 크게
때로는 작게 진동하여 눈 꺼풀이나 손이 떨리고 흔들리게 되어 있다. 그것이 나의 인격을 유지하려는 싸인 인데
이것을 아간을 무시하고 등지게 되자 곧 그 탐욕이라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둘째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등졌다.
수6:17-18을 보면 여리고 성에서 점령된 것을 여호와께 바치고 손대지 말라고 명령 하셨다. 그것을 진멸하는
것이 여호와께 바쳐지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쟁에서 수확한 물건들을 가져오면 안된다’
는 아주 쉬운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명령을 하신 이유는 그들이 진멸할 물건들을 취한다면 아마도 그들이 섬기든 이방신의 상징물들이 그속에 다분히 들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 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필요이상의 이세상 탐욕에 마음을 빼앗기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스라엘의 영적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인데 이것을 아간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시하였거나 그의 명령을
가볍게 여긴 것이다.
셋째는 아간은 공동체를 등졌다.
아간은 부모가 있고 조부가 있고 증조부가 있고 이스라엘의 계보 중에 있는 사람이다. 여호수아가 아이성에서 여지없이 패한 이유를
알게 되자 그 패망에 이르게 된 장 본인을 추적하는 모양을 보아도 그는 공동체 중의 귀한 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수 있다.
삽디가족-세라족속-유다지파 였는데 이것은 바로 아간 혼자가 아닌 큰 공동체 중의 또 한 작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의 표현으로 ‘가문의 영광’ 이 아닌 ‘가문에 먹칠한 사람’ 이 되고 말았다.
주님은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곳에 그들중에 내가 함께 하겠다”-마18:20- 고 말씀 하셨다. 즉 공동체 속에 내가 적극적인 임재를 하시겠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 믿음의 공동체가 약하고 부족하기는 해서 사탄의 침투가 있기는 하지만 이 공동체는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나의 유익을 해친다고 느낄찌라도 결코 등져서는 안된다. 더 나아가 손해를 보면서 이 공동체를 지켜 나갈 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함께 맛볼수 있다.
그러므로 더 나아가 우리는 내가 속한 공동체인 가정과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축복과 저주 사이
여호수아 8:30-35
이스라엘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요단강이 가운데로 흐른다.
그 위쪽에는 갈릴리 바다이고 아래쪽에는 사해이며 요단강을 기준으로 한 가운데 쯤 서쪽 바로 옆에 세겜(Shechem)
이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를 중심으로 위쪽은 에발산(Mt.
Eball) 이고 아래쪽은 그리심산(Mt. Gerizim)이다. 본문에 나오는 이름들이다.
에발산은 민둥산이란 뜻으로 오늘날 나블루스(Nablus)에 해당하는 해발 938m(3077피트)가 된다. 그리고 그림심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장소로 추정되며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연결 할수 있는 요충지라고 할수 있는 지금은 ‘예벨 엘-톨’ 이라 불려지는 산이다. 그리고 이 두 산 사이는
계곡이 깊어서 공간 음향의 반향 작용이 매우 뛰어나 거기 계단식 극장이 있다.
신명기
11장 29절을 보면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그 곳에 이르르면 단을 쌓고 축복과 저주가
담긴 율법을 낭송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본문에 여호수아는 에발산에 이르러 하나님을 위해 단을 쌓았으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들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서게 한 다음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과 저주를 담은 율법을 낭송했다.
여기에서 하나하나 그 의미를 살펴보자
첫째 여기에서 백성은 단을 쌓았는데 장소는 에발산, 방법은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에서이다.
그것은 창조된 그대로를 유지하는 하나님의 통치권과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사는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렸다.(33절) 번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성별과 속량을 상징하였고 또 화목제는 제사후 먹을수 있다는 뜻인데 하나님과의 관계회복과 또 그의 함께 하심에 대한 축제가
된다.
둘째는 모세가 받은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돌판에 기록을 한다. 먼저 돌에 회반죽으로 덧칠하고 엄숙하게
소집된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율법은 기록되었다.
셋째는 축복과 저주의 선언낭송 이벤트이다. 이스라엘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들과 이방인들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맨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를 중심해서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서고 모세가 이스라엘 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낭송 하였다. 아마도 전 회중이 두 그룹을 나누어서
합창을 한 것 같다.
여호수아는 이제 독립적인 지휘권을 가지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또한 아이성을 점령했다. 그래서 이제는 새땅을 향한 전진만 남았다.
그렇지만 여호수아는 독립적인 지휘권과 또한 공적이 있었지만 잠시 전진을 멈추고 오래전에 자기의 선배 모세가 지시한 명령을
그대로 따르며 지키는 행위이다. 그것은 단순이 선배의 말을 따른 것이 아니라 모세의 지시를 하나님의 지시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의문이 하나 생긴다. 축복을 낭송하는 사람과 저주를 낭송하는 사람들을 구분할 때 축복낭송을 자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을 것
같은데 자원이 가능 했었는지 아니면 명령대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했는지?. 나라면 아마도 축복낭송에 합류
지원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선호하는 것에 치우치려고 하지말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축복과 저주가 함께
우리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일은 새로운 땅의 정복은 단순히 여호수아의 리더십이나 백성의 힘이 아니고 하나님의 인도요 그 분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며 또한 여호와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여호와 되심과 그 분의 통치를 공적으로 알리는 그런 중대한 일이었다.
부산 태종대 2010 촬영
축소지향
삿7:1-8
"여기서 좀 나가 주세요. 복잡하거든요“ 가끔 부엌에 도우러
들어 갔다가 아내에게 듣는 말이다.
어떤일을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많은 인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형편에 따라서 적은 인원이 더 유익할때가 있다. 그러나 전쟁은 대체로 인원이 많을수록 승리하는데 유리하다. 그래서 국제관계에서도 중국과 인도가 미국과 견주어 힘 겨루기를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어떤일을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많은 인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형편에 따라서 적은 인원이 더 유익할때가 있다. 그러나 전쟁은 대체로 인원이 많을수록 승리하는데 유리하다. 그래서 국제관계에서도 중국과 인도가 미국과 견주어 힘 겨루기를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 리더로 섰을 때에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축소 지향을 지시한다. 여기 전투에 임할 자들은 전부
32,000 명이었다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이 지시대로 전투에 임할 자들을 축소시켜 나가고 있다. 먼저 전쟁하기를 두려워 하는 자들은 돌아가라고 할 때 돌아간 자들이 22,000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도 많으니 좀 더 걸려내어 정예군만 남기자고 했다. 그 방법이
그들을 물가에 데리고 나가서 물을 마시게 할 때 성급히 얼굴을 물에 대어 혀로 물을 핥아 먹는 자를 따로 세우고 물을 손으로 떠서 입에 대고 먹는
자를 남겼더니 300명이었다. 그리고 그 300명으로 전투하라는 지시이다. 전쟁을 하려면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 할텐데 그렇게 축소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하나님이 염려하고 계시는 것이 있다.
그것의 첫째는 군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에는 군인이 많다는 것이 사람의 생각하는 큰 것이 이기고 많은 것이 이긴다는 원리와 전혀 다른 것이다. 많은 군인보다 싸우기에 필요한 정예군을 바라시는 것이다.
둘째는 많은 군인이 투입된 후에 만약에 전쟁에 이긴다고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자랑하기를 “우리 군대가 많았고 우리 전투 능력이 우수해서 이겼다.”라고 자랑하고 자긍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명기 8:17에도 이런 말씀이 나온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얻는 능력을 주셨음이라--”
그것의 첫째는 군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에는 군인이 많다는 것이 사람의 생각하는 큰 것이 이기고 많은 것이 이긴다는 원리와 전혀 다른 것이다. 많은 군인보다 싸우기에 필요한 정예군을 바라시는 것이다.
둘째는 많은 군인이 투입된 후에 만약에 전쟁에 이긴다고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자랑하기를 “우리 군대가 많았고 우리 전투 능력이 우수해서 이겼다.”라고 자랑하고 자긍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명기 8:17에도 이런 말씀이 나온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얻는 능력을 주셨음이라--”
보통 어떤 일이 잘 되기만 하면, 수입이 많기만 하면, 자녀들이 성공하기만 하면,
전쟁은 승리하기만 하면 된다는 사고 방식을 가지고 살도록 사회는 발전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초점이 전혀 다르시다. “하나님의 손이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 덕분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라는 고백이 성공이나 잘됨에 대한 자긍심 보다 더 중요 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의 힘에 의존하면서 실패에 대한 좌절감과 보다더 크고 의미있는 일을 함에 있어서 두려움에 사로 잡히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 함으로
깨어지지 않는 자신감과 감사를 주시려고 하는 것이다.
7장 이후의 기록을 통해서 보면 기든온 300명의 군사로 미디안을 충분히
물리치고 승리하였다. 전쟁의 승리와 패배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백성은 끊임없이 주님을 섬기며 그를
경배해야 한다는 교훈이 있다.
“만일 세일스 피어가 이 방에 들어 온다면 우리는 모두 일어나서 경의를 표해야 하지만 그분(그리스도)이 들어오셨다면 우리는 무릎을 꿇어 경배해야 한다. -Charles Lamb-
5-20-12 여러분의 목사 서정길
요세미티 기슭에 숨겨진 작은 돌맹이들
떠나는 복
창12:1-3
아브라함의 복은 떠남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스스로 원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 하셨기에 순종으로
떠나는 것이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1절)
그런데 떠난다는 것은 일종의 버림을 말하는 것이다. 고대에 있어서 “떠나라”라는 명령은 이동이 잦은 분업화 시대나 현대사회
보다 훨씬 지키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기에 모든 것들을 버리는 심정으로 명령을 지키는 일이다.
“떠난다”라는 히브리 말은 “레크 르카 민”으로 지금 살고 있는 곳 즉 “--로부터
가라”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떠나기전에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버려야 떠나는 행동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기를 지탱해준
삶의 자리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명령을 하시면서 동시에 기대를 가지신다. 새로운 축복의 길로 인도하여 새출발을 이끄시는
기대감이다. 이전에는 자기주장을 해 왔던 삶의 소유권이라든가 안정, 힘, 권한들이 있었을 지라도 그것을 버림으로써 세상을 향해 새로운 발돋움을 하여야 하는 소명과
사명이 깃들어 있다.
“레크 르카”는 무슨 뜻인가? 그것은 첫째 “너 스스로 가라 go for yourself” 즉 세상사람과 상의하지말고 스스로 떠나라는 것이다. 둘째 “너 홀로가라
go by yourself" 머나먼 길을 아브라함 혼자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네 자신에게로 가라 go to yourself" 너 자신의 뿌리,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뜻이 된다.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문화나 문명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다수의 의견에 휩쓸리는 대중집단이
아니다. 그 사람은 원래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을 따라사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다. 이 떠남은 그래서 고독한 걸음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떠남은 하나님이 특별 관심을 기우리는 축복의 길이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무작정 아무곳이나 떠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네게 지시할 땅”이라는 명제 즉 예비한곳, 하나님이 그때그때 인도할 곳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나아가야 할 곳은 넓고 기름지고 안정된 곳의 땅이 아니다. 그곳은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지는 팔레스타인의
땅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 넓은 곳 중의 좁디좁은 어떤 한 곳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공간적인 복을 넘어서는 것이다. 삶의 공간이라는 것은 필요에 따라 좁기도 하고
또 넓어지기도 한다 각자 필요에 따라 생활 터전은 적절한 많큼의 크기들이 있다. 그러기 비록 좁은 팔레스타인의 땅이지만 이곳은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는 시작의 땅이요 복의 근원(2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땅이요
희망의 소식이 뻣어가기 위한 시작이요 통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새로운 삶은 그 삶이 보잘것 없어 보여도 새차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진정한 복된 인생이며 복의근원
즉 복의 샘(3절)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순종으로 당당하게 맞이하며 떠나가는 자가 누릴 몫 이요 또한 복이다.(마6:33)
요세미티 해프 돔 2006 촬영
주제: 제사장을 포함한 레위지파에 대한 규정
본문: 신18:1-8
레위지파 내에서 제사장 직은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제한되어 있다.(출28:1)
그리고 레위인들은 성막과 성전에서의 일들을 돕기 위해서 따로 세워 졌다. (민3:5-10) 이것은 성직과 일반직의 차이를 두려고 한 것이 아니라 레위지파를
세워서 그렇게 하기로 규정한 것이다.
그들은 한 지파로써 기업 즉 부족 영토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나머지 이스라엘
인들과 다르게 취급 되어왔다.
그래서 제사장 직을 포함한 레위지파는 모두 이스라엘에서 그 땅의 분배나 재산이
없다. 그 이유는 여호와가 그들의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재산이 된다는 뜻은 제사장을 포함한
레위인들은 백성들이 여호와께 바치는 예물을 통해서 생활을 꾸려 나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구약시대 당시에 소나 양으로 제물을 드리는데 그 제사후에 앞다리나 턱 위의
것은 제사장의 몫이 된다.(3절)
그리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물로 바칠 때 첫 곡식과 처음 짠 포도주와 감람
기름과 처음깍은 양털을 바치는데 그것도 제사장의 몫이된다. 동시에 레위기 18장에는 십일조(회중)가 레위인의 몫이고 십일조에 십일조(레위인)는 제사장의 몫이된다.
결국 하나님은 제사장들과 레위지파 에게는 본서와 민수기 18장의
규례대로 집행 하신다.
의미를 좀 살펴보자.
이러한 규정들은 제사장 직을 포함한 레위인은 생계유지에 대한 염려를 잊고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고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신실한 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성전의 일을 담당한 레위인의 안녕을
지켜주는 일이 된다. 예배의 신실성과 레위인의 풍족함이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이 말씀이 오늘날의 교회 운영에 의미면에서 다소 적용이 가능하다.
풀타임 사역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부해야 된다든가 가난해야 된다는 양 극단의
사고방식이어서는 안되고 또 회중이 돈을 모아주는 봉급이라는 개념도 아니어야 한다. 오히려 믿음으로 신실하게 예배 드리는 사람들에
의해서 신앙공동체가 그 사역자들의 생활비를 전담하는 일이라고 믿으면 좋다.
나아가 좀 더 바람직한 것은 구약성경의 규례와 원칙의 절차를 따르되 그 내용은
다분히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형제애가 되어서 풀타임 사역자와 성도간에 있어서 신실한 예배가 중심이 된 이후의 삶들이 서로 책임과 섬기는 아름다운
관계가 되어야 한다. (고전9:9, 갈6:6)
레위지파는 분배된 땅이 없다.(예루살렘 전경 :서목사 촬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