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일 금요일

사람이 상식이 있어야 한다.

 


상식이 통해야 한다. 상식이 무엇인가?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통용되는 말과 행동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정한것은 없지만 사람은 이렇게 해야한다. 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특히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야한다는 규범이 세워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지역마다 가정의 생활페턴마다 각각 다 다르니 기준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이다. 그리고 누가 규범에 맞는지 틀리는지를 누가 규정하느냐가 문제이다.  그렇다면 우선 어떤행동에 반응을 보아야 한다.  내가 국수를 먹을때 후루룩 소리를 심하게 냈다면 혹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처다보는 눈동자가 어떤지 볼수 있다. 그가 웃으면 확인하기가 쉽지않다. 좋은 웃음인지 비웃음인지를 감지 해야 되니까.  그의 반응이 얼굴을 찌프린다면 분명 이것은 내가 상식이 없는 짓을 한 것일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한번 가지고 안된다. 적어도 몇번의 시험을 거쳐서 공통분모를 찾아내서 규정해야한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에 대해서 행동과 반응, 반응과 행동을 반복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인품에 관해서나 상식에 관해서 책을 쓴 것이 있다면 읽어보면 된다. 그러나 그 글을 쓴 사람이 누구냐를 알아야 한다. 일본사람인가 인도사람인가를 보아야만 한다. 성경에는 함축해서 기록해 놓은것이 있다. '사랑'이다. 그런데 조심해야한다. 사랑이란 말처럼 광범위한것은 없으니 말이다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사랑에다가 하나 더 덧붙여 본다. 섬김이다.  이쯤되니 이것은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피동적이 되고 만다. 피동적인 행동은 상대방에게 순수하게 적용되기가 어렵다. 의무감이라든가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쉽게 해석할수 있다. 여기에 양보, 적절성, 등등이 끼어들어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교정해 나가는 것이다. 미화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다시 말한다. 여기에 스스로 깨닫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윽한 자의가 있어야 하고 피동이 아닌 능동이 있어야 하고 자신이 먼저 즐거움이 있어야 하고 호의가 있어야하고 되돌려 받으려는 마음이 아니어야 한다. 이러다가 내가 갈길을 잃어 버리는 것 같다. 라인을 다시 잡자. 상식이란 무엇인가? 먼저 자신을 다듬어야하고 그다음 습관화 해야하고 그 다음은 반응에 의한 교정된 행동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렇게 반복하면 상식이 있는 사람이 된다? 글쎄 뭔가 미완성이다.  내일 일어나서 일찍 할일이 있다. 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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