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4일 금요일
로마시대의 노예생활
대체로 집안에서 놀았다. 물론 바이러스 때문에 만남이 적어진 것이지만,, 이것이 그런대로 지낼만 하다.
내일은 효사랑 선교회 부에나 팍에 갈 예정이다. 아내의 녹화를 위혀서이다.
나는 에베소서 강좌 19강을 준비하노라니 로마시대의 노예들의 현장이 눈물겹다.
이하는 오늘 에베소서 강좌 19강을 준비한 서론이다.
<바울이 본서를 기록해서 에베소 교회로 보내던 그 시대의 로마제국에는 약 6천만명 가량의 노예가 있었다고 추측 합니다. 로마는 세계의 여왕이라고 자만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로마인이 일을 한다는 것은 로마시민의 존엄성을 비하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 되었습니다. 실제로 모든일은 노예가 다 하였다고 합니다. 의사나 교사들 까지도 노예가 있었다고 합니다. 황제의 편지를 대필하며 고소 사건을 취급하며 재정관리하는 사람들도 노예였다고 합니다.
주인들 중에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노예와의 관계가 아주 좋은 주인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주인과 노예 사이에는 매우 깊은 충성과 애정으로 묶어진 관계가 있기도 하였습니다. 주석가 바클레이가 조사한 바로는 어떤 주인은 노예가 죽으므로 인해서 너무 상심해서 친구에게 쓴 편지가 남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여보게 나는 언제나 나의 노예들을 해방시켜 주었다네 그런데 이번에 나의 노예의 죽음은 정말 뜻밖의 일이라네 나는 그에게 유언을 남기도록 하고 그 유언대로 해 주었다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노예생활이란 비참하고 무서운 일이 였습니다. 법적으로 볼때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노예와 주인과는 공동점이 하나도 없다. 노예는 하나의 도구였다. 그러므로 노예와 주인과는 우정의 관계는 있을수 없다. 농업에 있어서 바아로 (Varro) 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첫째는 말하는 농기구, 둘째는 소리내는 농기구 셋째는 소리도 내지 못하는 농기구가 있다. 둘째는 짐승이고 셋째는 곡괭이 같은 농기구이고 첫째가 노예이다.
노예를 처분하는 방법에 대해서 늙은 노예는 쓰레기 더미에 버려서 굶어죽게 하고, 앓고 있는 노예는 밥을 주기가 아깝다고 했고, 병든 노예는 고장나서 쓸모없는 도구와 같다고 했습니다.
도망가다 잡힌 노예에게는 ‘도망’ 이란 뜻의 라틴어 ‘프기티버스’ fugitivus 의 첫자인 F를 이마에 낙인 찍었고 최악의 경우에는 사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노예가 두려워 떠는 것은 그들의 운명이 주인들의 기분에 달려 있었던 점입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자기 애완용의 메추라기 새를 죽였다고 해서 한 노예를 십자가 형에 처했습니다. 어떤 주인은 수정으로 만든 자신의 술잔을 떨어트려 깨트렸다고 해서 노예를 산채로 사나운 장어가 있는 못에 집어 넣었고, 한 부인은 단지 화가 난다는 이유로 노예를 죽이라고 명령했다고 했다고 하며 수건의 한 짝이 없어 졌다고 고문을 하고 낙인을 찍었다고 합니다.
소설의 장르가 한국, 일본, 미국이 많이 다른것 같다. 뭐라고 별 할 이야기는 없지만,, 교회 소설을 쓰고 싶은데 실력이 모자라는지 시작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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